아침 산책을 하며 했던 연인에 대한 짧은 생각
인연은 수많은 우연 속에 맺어진다. 생각해보자. 여러 기회의 순간에서 B가 아닌 A를 선택했기에 우리는 눈 앞의 인연을 만날 수 있었다. 다만, 마냥 우연이라고 하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연인에게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날, 그 날 그 자리에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까. 확실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내가 사랑하는 걸까?'하고 느끼는 첫 두근거림의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짧고 강렬한 두근거림이 6년째 이어져오는 걸 보니, 역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나의 연인은 인연에 가깝다.
스물네 살의 봄은 외로움이었다. 하늘은 어두웠고 벚꽃은 처량했다. 이따금씩 타인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혼자 살아가는 장난감처럼 느껴지곤 했으니 말이다. '난 지금껏 사랑이 그리운 게 아니라, 날 위해 줄 사람이 더 그리웠나 봐요.'라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내 곁에 머물러 줄 단 한 사람이 그리웠고 그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외로웠다. 이 나이가 되도록 연애를 해 본 경험이 없었다. 짝사랑이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하였지만.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 때 소극적인 자세는 매 번 걸림돌이 되었다. 고백하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만 키워나가던 사랑은 그렇게 반복되었다. '차라리 말이라도 꺼내보면 어땠을까' 싶다가도 희박해 보였던 성공 가능성을 보면 참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은 숨기거나 감출 수 없다. 그 사람의 눈빛, 말투, 표정, 행동을 보면 무릇 티가 나기 때문이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고, 목소리만 듣고 있어도 좋고, 한 공간 안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설레었는지. 그랬던 내가 짝사랑하고 있다는 자신과의 비밀을 지켰을 리 없다. 은연중에 드러냈던 서툰 마음. 그 마음에 확신이 없으니 상대에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자의, 또는 타의로 인해 스물네 살까지 연애경험이 없었지만, 그 해 봄 그녀는 나에게 다가왔다. 서서히, 꽃샘추위가 모두 지나야 진정한 봄이 찾아오듯.
처음 만나 '그녀'라는 존재를 가슴에 새긴 날로부터 한 달 즈음 지났을 때였다. 대담하지 못한 나, 못지않게 소심했던 그녀는 일주일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고백했던 날, 술기운을 빌렸던 나는 후회스러웠다. 진심이 고작 몇 잔의 술로 인해 왜곡될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그녀는 취기가 아닌 진심으로 받아주었고, 우리의 연애는 6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이 곳에 옮겨 적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헤어질뻔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나, 혹은 그녀에 의해서. 싸운 적도 있었다. 비록 우리는 '싸운 적이 있었나?'하고 반문하며 다툰 정도로 생각하지만. 우리는 전처럼 뜨겁지는 않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각자 느끼고 있다. 하지만 따사롭게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 살아가다 보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눈가에 차오르는 은은한 햇살과 양 볼을 어루만지는 상쾌한 공기, 그녀를 떠올리며 거리낌 없이 미소를 짓고 있는 나는 사랑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
가지에 구름이 걸렸다. 거리마다 꽃이 피었다. 따뜻해진 날씨만큼 가벼워진 표정들엔 싹이 틔웠다. 그 사이를 걸었다. 여전히 겨울에 머물러 있는 나의 모습은, 출근길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부터 혼자 마주한 듯했다. 성큼 봄이 다가왔지만, 냉큼 받아들이지 못한 나. 새로운 계절로의 변화가 달갑지 않은 이유는 그녀와 보냈던 겨울이 행복해서였고, 추억으로 남기기에는 아쉬워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