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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이한 그대에게

by 두근거림

빗질 소리에 깨어난
달빛 자욱한 거리

머금던 미소 식어버린
섣부른 아침

걸었다.
시리운 계절 속
어제오늘
틈을 걸었다

보았다.
스치는 풍경 속
어렴풋이
너를 보았다

피었다. 피어났다.
봄, 봄.

기나긴 침묵 깨고
조용히
나의 마음 두드린다.




아침이 찾아왔어요. 긴 잠에서 깨어난 모두가 분주해지는 시간. 피곤하다는 듯 울어대는 알람시계와 늦었다는 듯 보채는 수도꼭지의 물줄기가 멍해지고 싶은 마음에 다급함을 전하는 듯해요. 무심코 올려다본 시계의 분침은 평소와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고, 초침보다 빨라진 심장은 식탁에 놓인 빵을 외면하고 문 밖으로 나갈 것을 권하네요.


세상은 여전히 잠에 빠진 듯해요. 지난밤 꾸었던 꿈이 달콤해서일까요. 적막한 거리에는 오직 환경미화원 아저씨의 빗질 소리만 들리네요. 저 멀리, 대지를 적시는 빛이 보여요. 아마, 해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겠지요. 아침이라고 하기엔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은 여전히 쌀쌀한 것 같아요.


봄이 온 지도 꽤 여러 날이 지났어요. 꽃샘추위가 지나가며 흘린 두어 번의 비도 찾아왔지요. 완연한 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반가워하지도 즐거워하지도 못했어요. 괴로운 일들이 잦았기 때문일까요. 살아간다는 생각보다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에요. 오늘을 담담히 살지 못했다고 해서, 구차하게 내일을 기대하진 않았어요. 헛된 희망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올 뿐이거든요.


그러다가,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에서 우연히 벚꽃을 보았어요. 화사한 연분홍빛 색감은 익히 알고 있던 벚꽃 그 자체였어요. 아-하고 탄식을 내뱉기도 전에 그대와 함께했던 봄의 기억들이 피어났어요. 나누어 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산뜻한 노래를 들으며, 보냈던 여러 봄이 지나고 지나 이렇듯 만개했네요.


지금, 그대는 무얼 하고 있나요. 저는 끔찍하게 여기는 사무실에 다다랐지만 행복이 차오르고 있어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미소 짓고 있는 제가 느껴져요. 이 순간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만 이제 들어가야 해요. 지각이 코 앞으로 다가왔거든요.


괴로웠던 마음을 조용히 두드리는, 봄이라는 손님은 벚꽃이 아니라 그대였나 봐요. 벚꽃 속에 묻어나던 그대 모습이 나를 설레이게 하네요.




*위 사진은 www.pixabay.com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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