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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pr 15. 2017

봄비를 맞고 있는 그대에게

투둑 투둑. 봄비가 내린다. 흘려들은 아침 일기예보에선 화창한 하루가 예상된다고 했다. 얕은 운동화에 긴 양말을 신고 나왔는데. 흘러내리는 비를 보니 화창한 하루가 되긴 글렀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며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날씨는,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처럼 느껴진다. 화창한 날씨를 깨끗이 지워내듯 처연하게 울어대니 말이다. 무엇으로 인해 괴로웠는지, 실컷 울어대는 날씨. 그 날씨의 마음을 보고 있다 보면 잔뜩 주늑이 들고 안쓰럽다. 문득 모두 잠든 밤, 혼자 깨어난 방 안에서 흐느끼며 울던 내가 생각난다. 힘들었겠지, 힘들었겠지 하며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다만, 이건 온전히 우산을 든 나의 이야기이다. 우산을 미처 들고 오지 못한 사람들에겐 이런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하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퇴근길 장관이 연출된다. 지하철 입구에 늘어선 저렴한 우산과 편의점 앞에 진열되어 있는 우산, 그리고 떨어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는 사람들까지. 그런 날, 운이 좋게 사무실에 남아있던 우산을 쓰고 퇴근하다 보면 미안한 괜스레 마음이 든다. 나에게 최신식 기계처럼 기상을 예측하는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일기예보를 보고 출근했을 뿐인데. 누구는 옷을 입은 채 샤워라도 하듯 젖어가고, 나는 몇 방울의 비만 맞으며 감상에 젖고 있으니 말이다.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선뜻 우산을 건네주면 어떨까. 굳은 얼굴로 리어카를 끌고 계신 어르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위태롭게 뛰어가는 학생들에게, 깊게 패인 주름에 빗물이 맺히는 중년의 어른에게. 그럼으로써 비에 맞게 되는 나를 생각하면 그 누군가가 선뜻 받지 못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떨까.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쓸 수 있는 우산을 개발하는 거다. '우산의 여행'이라는 주제로 지하철 역마다 '우산 정류장'을 만든다. 오늘처럼 비가 오게 될 경우 정해진 장소에 비치하며,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한 사람은 이곳에 들러 대여한다. 사용할 만큼 사용하고 주변에 있는 지하철 역에 반납하거나 주변에 비를 맞는 이웃이 있다면 건네주고, 또 건네주면서 우산의 여정을 이어간다. 회수율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공공재적 성격을 띨 수 있도록 특정 색깔과 문구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어두운 날에도 눈에 잘 띌 수 있는 노란색에 "우산의 여행에 함께 동참해주세요."와 같은 문구를 넣는다. 그럼으로써 사정에 따라 집 안에 잠시 보관할 수는 있지만 영원히 방치되는 것을 방지한다.


작고 초라한, 언제 망가질지 모를 투명우산을 쓴 채 하는 상상치고는 제법 진지하다. 언제였던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무인카페가 비용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손님으로 인해 몸살을 겪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요즈음에는 어떠한가 싶어 찾아보니 요금을 내지 않았다는 흉흉한 소문보다 가게를 소개하거나, 가게의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등의 선행을 알리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무인카페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려움이야 많을 것이다. 여전히 돈을 내지 않거나, 사용한 자리를 깔끔히 정리하지 않고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양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맛있는 차 한잔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러쿵, 저러쿵 생각하는 사이 집 근처 역에 도착했다.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불러온다는 말이 있다. 이제 그 말을 지하철 입구 옆에 투명 비닐우산을 비스듬히 세워 놓음으로써 실천해보고자 한다. 이 우산은, 앞으로 어떤 여행을 떠나게 될까.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될까, 아니면 환경미화원 아저씨의 인상을 찌푸리게 할 쓰레기로 전락하게 될까. 알 수 없지만, 욕심 같지만 나의 순수한 마음이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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