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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y 13. 2017

긴 연휴를 끝낸 그대에게

달은 노래한다. 밤은 연출하고 구름은 연주한다. 무대 아래, 뜻 모를 표정을 한 우리들은 관객이 된다.


밤을 지나다 보면 노래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주변에 그 누구도 노래를 틀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질수록 노랫소리는 더욱 격양된다.


혹시, 보름을 맞이한 달이 바람에 빗대어 외치는 독백은 아닐까.


선곡은 기분에 따라 달라지나 보다. 비가 오던 밤이면 유독 우울한 노래를 들렸고, 안개가 낀 날에는 잔잔한 노래가 들렸으며, 맑은 날에는 어깨가 들썩이는 노래를 들렸다. 오늘, 밤을 지나며 마음이 잔잔해지는 걸 보아하니 하늘에는 안개가 그윽이 끼었나 보다.



안개 낀 밤에는 보름달마저도 슬퍼 보인다. 사람이 울먹이는 표정 같기도 하고, 애써 감추려 했던 우울한 감정이 웃는 얼굴 위로 겹쳐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귀에서 잔잔한 멜로디가 들려온다. 밝은 표정을 지어보려 해도, 거리에는 온통 안개 낀 보름달뿐이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천천히 살펴보아도, 안개 낀 보름달뿐이다.


한숨이 세어 나오고, 안개는 더욱 짙어진다. 오래된 형광등처럼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긴 연휴를 보내고 난 후이기 때문일까.




연휴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아- 하는 탄식만 새어 나오는 걸 보니 실감이 나질 않나 보다.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거나, 무리하게 야근을 해야 할 때면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이번 연휴를 떠올렸기에 그런 걸까.


어느덧 연휴는 끝나가고, 나는 일상으로 되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기나긴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여행객이 된 기분이다. 들떴던 마음은 가라앉고 멋적은 미소를 지으며 지나온 면면들을 추억하고 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창 밖 너머의 풍경이 이러했는데.


산책을 나왔다. 밤이 되어도 흐린 하늘은 여전했다.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그 아래 전등이 하나, 둘 밝게 웃는다. 그 웃는 얼굴들을 마주 보며 걷는다.



평소 시력이 좋지 않은 나는 렌즈나 안경을 착용한다. 주로 렌즈를 착용하는 편인데, 안경을 끼게 되면 도수로 인해 작아지는 눈과 큰 코로 인해 어리버리한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새하얗게 지우고 싶은 밤이면, 나는 렌즈를 빼고 흐릿해진 길을 걷는다.


렌즈를 뺀 두 눈에 명확하게 보이는 건 없다. 모든 이들이 아련해 보일 뿐이다. 오직 전등만이 어둠을 밝히는 이 길 위에 나는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다.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웃음이 번져가듯, 나뭇잎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아름다운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것처럼.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겨도 충분하다는 것처럼.


시간은 흐른다. 내 곁을 흐르는 하천의 물처럼, 아무도 모르는 끝을 향해 나아간다. 그 끝에, 어떠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고인 물이 되어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할 수도 있고, 거대한 강과 만나 거룩한 삶을 이어갈 수도 있다. 두렵기도 하겠지만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이유, 그 이유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아가는 것밖에 없기 때문은 아닐까.


우직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경이롭다. 나 또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두렵지만,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애써 생각할 필요가 없기에 다시 걸음을 옮긴다.


산책로 끝에 다 달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내일의 나를 위해 자야만 한다. 잊지 않을 거다. 연휴를 보내며 만났던 사람들과 느꼈던 감정들.


기억할 것이다. 해맑게 웃는 전등, 그 아래에서 함께 웃고 있는 나뭇잎과 오늘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하천의 물, 그리고 행복해하는 그 순간의 나.




살아가다 보면 여럿 밤들을 보내게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떠한 밤'을 명확하게 떠올리기 어려운 이유는 '이 밤'이 '저 밤' 같고, '저 밤'이 '이 밤' 같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밤의 기억들은 세월 지나 얽히고 설키며 또 하나의 새로운 기억이 된다.



오늘, 긴 연휴 끝에 맞이했던 밤을 생각하며 걸었다.  씁쓸하다.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괴로워했는데, 조금 우울한 감정을 제외하고는 지낼만하다.


원래 삶이란 이런 걸까. 격정적이다가 허무해지고, 희망에 젖었다가 절망에 메마르는 게.


마치, 안개 낀 날의 보름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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