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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Nov 21. 2017

때로는 퇴고 없이, 자유롭게

글을 쓰게 되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하나 있다. 메인 사진을 보고 연필깎이라 오해할 수 있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과정은 '퇴고'이다.


퇴고를 거치지 않은, 글은 도떼기시장을 연상케 한다. 작은 매대에 옷과 생필품, 문구류들을 올려놓은 판매자가 "문구류 판매합니다"라고 말하여 보았더니, 대부분이 생필품이었을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


작성한 글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이리 저리로 뻗치는 생각들을 한 데로 모을 수 없다. 또한, 엉성한 문맥이나 지나친 표현들도 수정하지 못한다. 퇴고를 통해 다듬어진 글은 글쓴이의 의도를 명확하게 해 주고, 읽는 이에게 이해하기 쉽고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퇴고는 고달픈 과정이다. 구성한 글을 '완성'하기 위해, 과연 얼마나 깎아내야 하는 걸까. 글의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날 때까지라 알고는 있지만, 때로는 덜 깎아 어색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깎아 원래의 목적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일까. 즐겁게 글을 쓰다가도 퇴고할 시간이 되면 몸은 뻗뻗하게 굳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시간은, 글을 쓰는 것보다 더욱 고되다. 글을 쓸 때에는 퇴고가 남아 있으니 마음껏 쓸 수 있지만, 퇴고를 시작하면 더 이상 무를 수 없는 '글의 완성 단계'에 도달해야 되기 때문이다.


글을 제대로 배워본 적 없는 나는, 여러 번 퇴고를 한다. 부족한 글쓰기 실력으로 퇴고를 해야 나의 생각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겠다. 한 줄을 쓰고, 다음 한 줄을 오래도록 고민하는 나를 보면.



내 작가의 서랍에는 몇 년 전에 쓰고도 올리지 못한 글이 여럿 있다. 마음이 일어 쓰게 되었지만 완성할 자신이 없어서,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워 '게시'라는 버튼에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의 마음을 옮겨 적는 이 공간에 꼭 완성된 글을 올려야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해 주시는 분들을 위한, 기대에 응하는 글을 올려야 될 책임이 있지만, 나의 첫 시작은 그렇지 않았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퇴사를 하고 밀려오는 외로움은 나를 궁지로 내몰았다. 털어놓을 곳을 찾아봐도, 나 혼자 느리게 살아갈 뿐. 바쁜 사람들에게 입 뻥긋할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뜸 해지던 연락만큼 사람들과 멀어져 갔고, 침묵으로 일관하던 삶의 공백, 그 틈에 나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집에 있으면 전 직장에 대한 미련이 떠올랐고,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재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그러다 올려본 하늘엔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말할 곳이 없어 혼자 보고 지우려고 써 놓은 이야기들은 글이 되었다. 과거에 대한 넋두리와 오늘 처한 상황, 내일을 위한 다짐으로 이루어진 글을 적으며, 단 한 번도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았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되었다 여기는 정도까지 작성하고 올렸다. 그렇게 올린 글들을 다시 읽어 보면 엉성하기 그지없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엉성한 그 모습까지 '나'이구나 싶어 웃음이 난다.


어떠한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생각을 자유롭게 적는 이 공간에서의 나는 행복하다. 어떠한 수식어로도 꾸밀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퇴고는 필요하지만 가끔은 처음 썼던 그대로의 글을 보여주고 싶다. '나'이니까. 정리되지 않는, 진실된 '나'이니까.



삶도 마찬가지이다. 정리해가며 계획된 삶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흐르는 격류에 온몸을 맡겨보자. 흘러가는 대로, 살아지는 대로 살아보자. 자유로울 그 순간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였지만, 이 글을 얼마나 수정했는지 모르겠다. 조금 더 편하게 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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