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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24. 2017

자연스러운 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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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다. 아무런 표현도 떠오르지 않다는 핑계로 그토록 좋아하던 글을 쓰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낯설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심지어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도 글감은 불쑥 튀어나왔다. 그 글감을 바탕으로 단어를 생각하고, 문장으로 잇고, 글을 썼는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지금의 나의 모습은 결코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목적 없는 하루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기분과 같다. 멍하니. 시간이라는 바다를 향해하다가 우연히 글감을 발견하는 순간 서서히 노를 젓기 시작한다. 노를 저으며 다가오는 모든 것들은 행복이었다. 투명한 바다, 따스한 햇살, 푸르른 하늘까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듯, 왼발 뒤에 오른발이 나가듯 마음에 이는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면 되는데. 첫 문장부터 어김없이 삐걱거리던 나는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마냥 괴롭다.


괴롭다. 잠에서 깨어나 핸드폰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울 때까지. 늘어난 한숨은 나를 깎아내렸고 외부와의 단절을 야기했다. 외딴섬이 되어버렸다. 서로가 바다로 맞닿아 있지만 육지가 아닌, 배를 통해 왕래하지만 영원히 머물 수 없는 섬.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웃어주는 일. '잘 지내?'라는 안부에 '별일 없어'라고 대답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다로 맞닿아있을 뿐이고, 배는 영원히 머무를 수 없기 때문에. 하지만 짙은 안개가 꼈던 지난 몇 주간은 그 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직장생활에서의 불만족 때문인가 보다. 얼마 전 부서 변경을 통보받았다. 적성에 따른 직무배치는 바라지도 않았다. 마음의 여유, 부득이한 사정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건 어려운 일이었을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적응하거나, 그만두는 것 중 하나였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적응하는 걸 택했지만, 관리자에 대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웠다.


순수하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시키는 만큼, 주어진 만큼만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몇 날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열심히 일하고 싶다. 체스판에 서 있는 병사들 중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요즘. 손에 닿지 않는다면 가만히 있는 게 정답임을 깨달아가는 오늘. 외롭고, 쓸쓸하고, 괴롭다.


낮은 학력과 부족한 스펙, 들어가는 나이와 애매한 경력은 나를 옭아맨다. 회사 내에서의 부조리함과 떨어진 자신감은 불안감으로서 글에 반영되는 것 같다. 습관이 된 불안은 나의 생각이 틀릴지 모른다는 망상에 휩싸이게 한다. 아닌데. 아는데. 마냥 좋다고 할 순 없지만, 그리 나쁘지 않게 살아왔는데.


출근길, 우연히 들어갔던 최혜진 작가님의 글에는 다음와 같은 문장이 인용 되었다.


"글을 쓸 땐 미끄러져나가는 기분으로 써야한다. 말들은 절뚝거리고 고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미끄러져 나가기만 한다면 그 어떤 즐거움이 모든 걸 환히 비추게 된다. 조심조심 글을 쓰는 건 죽음과 같은 글쓰기다." -찰스 부코스키-


여기에서는 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삶에서 미끄러져나가는 기분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미끄러질 수 있다면 인위적인 느낌이나 거리낌도 없을 테고, 집 안에서의 나와 회사에서의 나, 글 속에서의 내가 한결같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그 어떤 즐거움이 미소로써 번질 것만 같다.


눈에 보이는 것에 쫓기다 보면 자주 망각하게 된다.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 오직 나만 생각해보았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토록 어려워하던 생각을 표현하는 일도, 매일 밤 침대를 들썩이게 했던 걱정을 줄이는 일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생각을 표현했을 때 서로의 감정이 상하는 일은 적었고, 걱정을 줄여도 상상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찰스 부코스키가 말한 것처럼 미끄러지듯 자유롭게 살면 되지 않을까. 말하고, 행동하고, 쓰며.


찻잔에서 올라오는 그윽한 향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열정에서 피어난 희망은 천장에 닿지 못한 채 식어가겠지만, 어떠한가. 아름다운 한때를 보낸 지난 기억이 앞으로의 삶을 환하게 비추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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