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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ug 10. 2017

마음이 쓰다, 글을 쓰다

요즈음 출근길에 오를 때면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부모님의 넓은 그늘이 그리워질까, 아니면 내가 상상해오던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도전할만한 용기도 없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사람은 소속을 통해 존재를 확인한다. 살아오며 속하게 되는 소속은 그 어떠한 설명보다 확실한 이력이 된다. 이력은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때로는 나를 설명하는 도구가 되고, 때로는 나를 옥죄는 도구가 된다. 그중에서도 학력과 관련된 소속은 중요한 이력 중 하나로 기록된다. 학력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가 얻게 되는 대가이다. 물론 학력이라는 기준으로만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판단할 수 없다. 일찍이 학업보다 자신의 적성과 맞는 분야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갉고 닦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일반 기업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쌓인 이력서 틈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짧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4년 차 직장인이 된 나에게는 경력이 중요한 이력으로 자리 잡았지만, 경력을 쌓기까지 기회를 얻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학력이 필요했다.

가정에서 나는 부모님의 그늘 아래 컸다.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겨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슈퍼맨처럼 나타나 도와주셨다. 어렸던 나에게 삶은 어려움 투성이었고, 한 두 번 받던 도움은 곧 익숙해져 당연스럽게 생각하며 성장했다. 스스로의 노력과 고민 없는 도움은 사람을 해결 능력 없는 겁쟁이로 만든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노래의 악보를 모두 외워 리코더로 연주하지 못하면 집에 갈 수 없다는 선생님 말씀에, 연습하며 보내는 시간보다 연주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과, 연주하고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쓴 적이 있다.


부모님의 손길이 현저히 줄어드는 성인기가 되었을 때, 삶의 본격적인 어려움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혼자서 대중교통을 잘 이용하지 못해 길을 헤매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어리바리하다며 혼나기 일쑤였다. 새로운 경험은 대부분 나에게 교훈이 아닌 곤욕으로 다가왔다. 어느 새부터 걱정과 두려움은 나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무언가를 해야 되는 상황이 되면 나는 친구를 떠올렸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자랐던 나는 반복되는 등굣길이 좋았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드는 안도감이 좋았다. 두 번째 직장에 취업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반복되는 출근길이 즐거웠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고된 하루를 무사히 마친 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랬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출근길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던 소속 덕분이다. 이 모든 소속, 그러니까 가족이나 직장, 친구들을 떠나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어려울 것 같다. 나는 그들이 미울 때도 있지만, 여전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고민이 길어지는 사이 웃음기 많던 얼굴은 굳어버렸고, 좁은 어깨는 서로에게 더욱 가까워지고 말았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끊임없이 불만을 담아내던 나. 그 사이 흘러가고 있는 세월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우울해진다. 괜히 나만 힘든 것 같고, 싱글벙글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마냥 행복해 보여 질투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삶을 선택한 것은 나다. 과거에 소속되었거나 현재 소속된 곳에서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한들,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꾸준히 노력해 본적이 별로 없다. 포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당장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인내해야 되는 상황이 생기면 최소한의 노력만 기울인 채 괴롭다, 괴롭다 되뇌며 포기했다. 이런 경험은 쌓여 나를 우물쭈물하고 우유부단하게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짐짓 웃음이 나온다.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나'이니까.

이러한 나에게 있어 글 쓰기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자유롭게, 소속을 뒤로한 채.


글을 쓴 지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일기 형식으로 쓰기 시작한 게 한, 두 편의 글로 점차 쌓이게 되었다. 여느 일들과 마찬가지로 인내에 따른 고통이 생기지만, 그 고통마저도 작성된 글을 읽다 보면 즐겁게 느껴진다. 평소에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글로 써 내려가는 건 상상 만으로도 나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처음에는 형식 없이 드는 감정에 따라 쓰다가 퇴사와 관련된 글로 사람들의의 관심을 얻었다. 관심에 힘입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여러 편 올렸다.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그냥 좋아서 쓰기 시작했는데 지속적인 관심은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만약 잘 쓰지 못해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은, 잠을 자다가도 자주 깨어나 글을 쓰게 만들었다.


'기대'라는 부담감은 점차 손에 힘이 들어가거나 멎게 했다. 수정을 거듭하다 되려 어색한 문장이 되어버리거나, 고민을 반복하다 한 줄도 완성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하는 편이다. 문법은 서툴고 글의 구조는 어색하기만 하다. 다만, 2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쓰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진실 되게 쓴 글은 자신이 원하는 색깔로 읽은 이의 마음을 물들인다. 글을 쓰고 난 뒤에 마음이 '행복'이었던 나처럼, 내 글을 읽은 분들의 마음도 '행복'이었다 생각하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마음이 쓸 때, 나는 글을 쓴다. 어떠한 내용으로 써 내려갈지 미리 고민하지 않는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쓰며 괴로웠다거나, 즐거웠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다 이내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쓰라린 마음에 약을 투여하듯,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글을 다 쓰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의 내가 있을 수 있게 도와주었던 모든 사람들께 감사하다.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미움을 건네준 사람들까지.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거나 '남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 떠나보고 싶다. 내일이 기약되지 않은 곳에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보고 싶다. 그 이후에 펼쳐질 미래를 고민하지 않고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순간을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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