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아침, 잠에서 깨었다. 찰나의 밤, 아쉬움을 달래며 마신 술로 인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다. 동료들이 따라주는 술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비틀대며 택시에 탄 것까진 기억나는데. 그 이후가 또렷하지 않다. 눈물을 흘렸던 걸까. 화장실 거울에 비친 두 눈이 퉁퉁 부어있는 걸 보니.
정말, 끝인 걸까. 휴가를 쓰고 늦잠을 잔, 여느 하루같이 느껴진다. 방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켰다. 출근길이었을 시간, 동료들이 남긴 메시지에는 "잘 들어갔어?"라든지, "이거 먹고 힘내세요" 라며 기프티콘이 보내져 있었다. 그렇다. 믿기지 않지만 나는 첫 번째 직장에서 퇴사했고, 백수로서의 첫 날을 맞이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않은 채 덜컥 그만두고 말았다.
충동적이거나 즉흥적이지 못한 나는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다닐지, 그만둘지에 대해 고민했다. 무엇을 선택하든 두려웠다. 나이는 들어가고 경력은 쌓여 갔으므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기회가 줄어드는 게 두려웠고, 막연한 상상만 가지고 그만두어 이만한 직장을 잃는다는 게 두려웠다.
친한 선배들은 확실한 대안을 찾지 않는 이상 그만두지 말라고 했다. 대안 없이 그만두고 나면 진로나 취업, 하다 못해 내일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거라며. 나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뭐 내가 직장에 다니며 그 외에 직장이나 직업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백수가 되어버린, 오늘의 나를.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내성적인 평소와는 다르게 태연한 척하며 애써 위로하였다.
막연하지만, 상상은 어느새 희망이 되어 나를 두근거리게 하였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여태껏 '나'다운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배워야 한다기에 정규 교육 과정을 밟았고, 가야 한다기에 군대에 다녀왔으며, 다녀야 한다기에 직장에 다녔다. 주어진 상황을 삶의 정답이라 여기며 받아들여온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삶에 싫증이 났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보기 좋은 행동만 하며, 즐거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닌, 주어진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나에게.
백수 첫날, 불어오는 바람 따라 내 마음 속 바람 따라 남산에 올랐다.
이른 점심을 먹고, 고민이 생길 때마다 찾았던 남산에 올랐다. 불현듯 들어차는 여러 고민들을 걸으며 털어낼 요량이었다. 남산을 오를 수 있는 다양한 구간 중에 충무로역부터 오르는 길을 택했다. 그런데, 전 날 술을 과하게 마셔서일까. 첫 발을 뗄 때만 해도 주변 경관이 평온하고 아름답게만 보였는데, 오르면 오를수록 '저건 담대한 남산이야. 절벽이 기가 막히는 군.'하며 숨이 턱 막혀왔다.
현실의 무게와 이상의 가치 사이에서 퇴사를 고민하고, 고민을 반복하다 결정적 순간에 단호했던 나의 결정을 되짚으며, 오르고 또 오르다 결국 버스를 타게 되었다.
버스 안은 낮 시간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였고, 올라가는 차도 옆 풍경은 한산하다 못해 쓸쓸했다. 문득 사무실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여유 있게 걷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던 내가 떠올랐다. 바쁜 일정들로 지나치듯 본 게 전부였지만 그들은, 적어도 내 눈에는 행복해 보였다. 이제 나도 창문 안 누군가에게 행복한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백수'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28년이라는 짧은 인생 동안 처음 백수가 되었다. 사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삶과 삶 사이에 원인 모를 구멍에 빠져버린 것 같은, 오늘의 나는 어딘지 모르게 불운하고 가치 없게 느껴진다.
백수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먼저, '백수(白手)'를 한자어로 찾아보았다. 네이버 사전에서는 '맨손'이라고 표현한다. 으잉. 맨손? 맞지 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그러다 우연히 '백수(百手)'라는 한자어가 생각났다. 손수 자에는 '수단, 방법'이라는 뜻도 있다. 해석하면 '백 가지의 수단 또는 방법'이다. 크-제법 그럴싸하다며, 연신 감탄하고 있는 나는 그래 봐야 백수(白手)이다. 음울한 현신을 굳이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개구쟁이 같은 내가 얄미웠다.
남산 정류장에 다다를 즈음, 거리에 늘여진 나무들을 보았다. 햇빛이 은은하게 비춰 특유의 아름다움을 더 했는데, 나뭇가지에는 생기발랄한 초록 잎과 말라가는 갈색 잎이 함께 머물고 있었다. 속으로 '힘든 오늘과 희망의 내일을 꿈꾸는 나와 조금 닮았으려나' 하고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이러쿵, 저러쿵 떠들기는 했지만 사실 후회가 남는다. 나는 현실에 안주하는 편이고, 아무런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뚜렷한 대안이 짠~ 하고 나타나는 건 아니니까.
좋은 사람과 좋은 환경,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을 나의 26살부터 28살 7월까지의 여정.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아팠던 그간의 기억들은 시간이 흘러, 그리운 추억이 되겠지. 그런 날이 온다면, 방황할 오늘의 나 또한 미소로서 반길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정류장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발을 내딛어야겠다.
2015.09.29.
퇴근할 즈음이 되면 창문에 노을이 고인다. 노랗게 물드는 사무실 너머의 세상. 적막이 찾아오는 이 곳과 달리 희망이 넘쳐흐른다. 당장 밖으로 나가 노을 속 주인공이 되면 어떨까. 두 어깨를 짓누르던 세상의 짊을 훌훌 털어버리고, 나를 잊고, 오직 노을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다면.
책상에 앉아 밀린 업무들을 처리한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마감에 가까이 다가간 것을 보니 여전히 멀기만 하다. 업무에 우선순위를 정하여 중요한 것부터 끝내라는, 오전 시간을 잘 활용하라는, 잠들기 전에 내일 할 일을 미리 메모해 두라는 유명한 말들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나 보다. 모니터에 비친, 풀려가는 두 눈이 어느새 깊은 밤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늦은 밤, 노을이 자취를 감추고 세상에 내 자취를 드러낸다. 이런 게, 내가 원하던 삶이었을까. 하루를 보내며, 그저 아무 탈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아니라면, 무엇일까. 2년 전 꿈에 부풀어 보았던 하늘은 여전히 맑지만, 노을이 사라진 하늘은 어둡기만 하다.
'나는 나다'라고 외치며, 두 팔을 번쩍 들고 싶다.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목청이 떨어질 것처럼, 두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격해진 감정에 강한 콧바람을 내쉬지만 이내 잠잠해진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2017. 0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