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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Feb 23. 2019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대학원 입학과 퇴사를 함께 준비하는 나의 최대 관심사는 학비 충당이다. 내가 등록한 상담심리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최소 500만 원이 넘는 학비를 5회에 걸쳐 납부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던, 박봉이었던 나는 덜 사고 덜 놀며 모은 돈이 조금 있다. 그러나 32살이라는 나이에 꿈을 좇는답시고 모은 돈을 잠자코 써버린 다는 것은, 인생의 주사위를 모래바닥 위에 냅다 던지는 꼴이 될 테다.      


대학원을 다닐 거면서 왜 직장을 그만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나에게는 참 아이러니한 질문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벗어나기 위해 찾은 길이 대학원 진학을 필수로 요구한다. 좋아하는 일을 경험하기 위해 괴로워하는 일을 언제 끝난다는 기한 없이 참고 견뎌야 한다니, 그렇다고 취업이 되지 않거나 현재보다 조건이 안 좋은 곳에 취업하는 등, 미래가 두려워 현재의 일을 계속하자니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고민 끝에 찾은 합의점은 비록 급여는 낮더라도 대학원에서 전공하는 학과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었다. 비록 상담심리사 자격증은 없지만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비슷한 형태의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여러 구인 사이트에 자주 올라오는 채용 공고를 통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저녁은 물론 업무 중에도 몰래 구인 사이트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어떤 직장에서 하는 상담업무가 저녁 6시에 맞춰 퇴근하고, 대학원과 가까이 있으며, 적금을 들진 못하더라도 학비와 생활비를 낼 수 있을까. 순진무구한 내 행동으로 느는 건 한숨과 흰머리였다.      


“여기에 지원해보는 건 어때요?”     


내 머리에 서리가 맺히는 걸 지켜보던 동료가 말했다. 자주 들어가는 구직 사이트에 뜬 공고인데, 나의 조건과 부합하다고 했다. 하던 업무를 뒤로 미루고 부리나케 확인해본 결과 저녁 6시 퇴근에 대학원과 가깝고 학비와 생활비를 내기에 충분했다. 설레었다. 이력서를 쓰기도 전에 근무하는 상상을 했다. 채용공고에는 학교복지사라고 쓰여 있었다. 만약 취업이 된다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 곁은 지켜주는 업무를 담당하게 될 거다.     


자신이 있었다. 공부한 바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사람을 엇나가고 억누르게 한다. 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그들이 마음을 여행할 때 어떠한 편견 없이 함께 일주할 용기가 있었다.     


“내일 오전 11시까지 면접에 참여하세요”     


꾸밈없이, 솔직하게 적은 이력서가 와 닿았던 걸까. 서류 합격이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통화할 때는 담담했지만 퇴사를 2주 앞둔 나에게 꽃길만 기다리는 게 아닐까 두근거렸다. 상담전문가로서의 첫 발자취가 학교복지사가 될 거라, 학생들과 함께 밝게 변화하는 내가 될 거라 생각했다.      


“행정실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될까요?”     


낯선 사람이 학교로 들어가면 난처할 수 있을 경비 아저씨를 생각해 먼저 여쭈어보았다. 경비실 안에 앉아있던 아저씨는 세상의 모든 인자함을 담은 것 같은 표정으로 길을 알려주었다. 느낌이 좋았다. 학교 안에서 처음 만난 분이 이렇게 호의적이라니. 정식 출근을 하며 면접 때 길을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밤새 했던 상상을 또 해버렸다.      


전날 퇴근 직전 휴가를 썼다는 죄책감도 없이 행정실 앞에 도착하였다. 문을 열기 전에 손목시계를 보니 10시 20분이었다. 40분이나 일찍 와서 행정실 안에 앉아 있으려니 겁이 나서 밖으로 나왔다. 방학을 맞이한 학교는 썰렁하였다. 운동장에는 단 한 명의 학생도 없었다. 봄방학이 끝나고 3월을 맞아 활기차게 뛰어노는 학생들을, 그 사이에서 허물없이 웃는 나를 보았다. 혹시라도 떨어지면 어찌 감당하려고 하는지, 왜 이렇게 나는 늘 설레발을 떨까. 면접 10분 전에 행정실로 들어간 나는, 안내에 따라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유선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면접이 끝날 때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다. 그 말에 나는 감사하다는,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마음을 담아 인사했다. 이 날 하루는 온종일 면접 생각이었다.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자책하기도 하고, 다시 면접 상황으로 돌아가 멋들어지게 말하는 나를 상상하기도 했다. 밥을 먹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티비를 보면서도 나는 되뇌었다.      


다음날, 출근을 하고 자리에 앉아 줄곧 시계를 쳐다보았다. 홈페이지에 적혀있던 합격자 발표는 오전 10시,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오전 10시 3분. 갑작스레 나가게 된 출장으로 면접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제때 못 받으면 어떡하나 걱정되었다. 운전을 하며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진동이 오지 않나 만져보기도 여러 번.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가는데, 아무런 소식도 없는 핸드폰 배경화면을 볼 때마다 ‘안 되나 보다’ 라며 자책했다.     


출장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머리를 싸매고 앉을 때까지 전화는 오지 않았다. 기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고를 다시 확인하였을 때, 합격자 발표 시간은 변함없었지만 내 핸드폰에는 한 통의 전화도 오지 않았다. 흔하게 걸려오던 광고 전화마저도.     


젊었을 때의 실패는 좋은 경험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 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불합격이라는 이름의 실패는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성정 한다는 느낌마저 없다. 기약 없이 합격의 길로 걸어가다 만난 불합격은 매 번 새롭다. 겁이 났다. 괜히 그만두는 건 아닐까, 이대로 영원히 취업이 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며.     


그러나 나는 안다. 기억이 난다. 어떠한 마음으로 퇴사를 결정했었는지. 벼랑 끝에 몰려 부는 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리던 나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고, 주변에 잡을 것도 하나 없던 나에게 꿈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맞바람에 눈조차 제대로 뜨기 어렵지만, 나는 계속해서 걸음을 내딛고자 한다. 비록 퇴사를 앞두고 첫 번째 취업에 실패했지만, 또 몇 번의 실패가 기다라고 있는지 모르지만 걸어가고 싶다. 꿈이 속삭이는 길로 한 걸음씩, 차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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