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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Oct 03. 2016

지난 1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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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인 줄로만 알았다. 뙤얕볓 같은 일상이 이어지는 요즘, 나의 마음은 불어오는 가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었나 보다. 어제였던가.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퍼진 은밀한 은행 냄새가 아니었다면 더욱 늦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가을은. 아무런 긔띔도 없이 덜컥, 좋아하는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지만 주로 살아가는 이유대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위해서였다. 때로는 정해 놓았던 주제 안에서, 때로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남겼던 당시의 글들. 치열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이제는 그저 노을만큼이나 잔잔한 추억이 되었다. 그때는 멀쩡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원망해보기도 하고, 발 끝에 치이는 돌멩이의 무기력함에 감정 이입하며 힘들어했던 거 같은데. 그 마저도 희미해져만 가니 앞으로 직면할 일들에 있어 '힘들다'라고 말하기가 상당히 곤란해졌다.


개별적인 글의 내용은 모두 다르지만, 썼던 시기에 따라 비슷한 양상을 띤다. 초기에는 일기를 쓴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독 감정에 솔직할 수 있었다. 이러한 종류의 글을 쓰다가 점차 특정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표현했다. '슬럼프에 대한 기억'이라는 글을 쓸 때부터였는데, 이 즈음부터 글을 쓰는 속도가 조금씩 더디어졌다. 줄줄이 써 내려가던 내용이 가닥가닥 끊기는 것을 시작으로 무거웠고, 어두웠으며, 무엇보다 심연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글을 통해 드러나는 나의 생각들이 현실에선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거란 괴리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매일 밤이면 집으로 돌아와 자유로이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지만, 다시 돌아가야 할 세상은 나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으니까.


그렇게, 나는 글을 쓰는 일과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쓰면 쓸수록 외로웠다. 글 속의 나를 바라보면, 과거처럼 충만해지는 게 아니라 비워내는 느낌이 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괴로움 속에 버티고 있었다. 누군가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는 않을까, 아니면 머릿속이 번쩍 하며 어떤 깨달음을 얻지는 않을까 하며. 하지만 이와 같은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고심 끝에 알게 되었다.


추구하고 싶은 삶이 있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막연하게 기다린다고 하여 기대하는 삶이 펼쳐질 리 만무하다. 그동안의 나는 가족의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 어려움 없이 자라 온 까닭 때문인지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현실을 부정하였고, 노력하지 않은 채 해결되기를 기도했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했을 법한 고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며 '나는 누구인가?'를 비롯하여,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는다. 하지만 '나는 누구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우리의 삶은 늘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이다. 괴로움에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순간에도, 더욱 머물고 싶은 행복한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맞다. 글을 통해 생각을 정리했다고 하여 현실의 고민들이 해결될 리 없다. 그 글에 녹아든 나의 간절함을 바탕으로 원하는 목표들을 이루어나가야 한다.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지난 1년의 시간이 무색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면 주변을 둘러보며 살아가는 이유를 찾으려 했다. 나의 가족, 연인, 친구를 떠올리며 의미를 부여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그대들 덕분이라고. 그러나 삶의 주체는 '나'이기 때문에, 내가 누리고 있는 삶의 영광을 누군가에게만 돌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해보자.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또는 사랑 덕분에 잘 지낸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그러한 흉내를 낼 수는 있지만, 그것은 결코 진심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사랑스러운 나의 존재를 만끽하며 현실에 안주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불안할지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를 사유하는 시간 뒤에 불안한 내일이 찾아올지라도, 그 불안으로 인해 끝없이 스스로를 질책하는 한이 있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난 1년은 나의 생각만큼 별 볼일 없지 않았다. 숱한 변화의 순간들을 맞이했고, 물러서지 않았다. 삶에 있어 아무런 의욕이 없던 나는, '어떻게 해야 의욕을 가질 수 있을까?'하고 묻게 되었다. 아무거나 괜찮다고 대답하던 내가 '그중에서 더 끌리는 건 없을까?'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고민에 바탕이 되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아름답게 가꾸고자 한다. 내면에 가득 들이차는 부정의 소리를 한 껏 끌어안으며. 노력하지 않았기에 헛되였고, 간절하지 않았기에 바라만 보았던 나의 생각들을 이루어 내기 위해.


또다시 찾아올까? 어둠이 내려앉은 세상에 부는 한 줄기 바람은. 그럴 수만 있다면, 묻고 싶다. 후회 없이 주어진 시간을 보냈느냐고. 대답하고 싶다. 그러했다고. 마주하는 절망과 환희 속에서 어김없이 최선을 다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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