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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un 26. 2016

수다스러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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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는 글쓰기이지만, 브런치라는 공간을 이용하게 된 이후 나의 삶을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러한 사실을 몰랐던 건 나뿐이지만, 조언을 구하지 않은 채 익명으로 글을 쓰다보니 모를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출근을 앞둔 일요일 저녁,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고민하며 글을 쓰고 있을까.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지만, 방향조차 알지 못하는 나는 흔들리고 떠밀렸다.외롭고 불안했던 시간들이 흘러가는 것을 망각하기 위해 약속의 유무를 떠나 무작정 밖으로 나가 보냈던. 그때의 시간들에 비하면 충분히 의미있지만.


우습다. 내가 살아온 과정을 눈여겨본 사람이라면 비슷한 말을 입가에 머금을 것이다. 나는 주관이 뚜렷하지 않다. 짜장면이 당기는 날에도 옆에서 떡볶이를 먹자 하면, 며칠 전부터 떡볶이를 먹고 싶었던 사람처럼 돌변하여 가게로 앞정서곤 했으니까. 이는 하나의 작은 예에 불과하지만, 늘 이렇게 살아왔다. 딱히 희생이라고도 생각하진 않았다. 그냥, 호의를 표하는 일상의 배려 정도라고나 할까.


게다가 상대방의 부탁은 왜 그리 거절을 못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거절로 인해 상대방이 나에게 실망할까 하는 우려가 더 컸던 것 같지만, 부탁을 해오면 무리를 해서라도 들어주곤 했다. 그 무리가 비록 나를 위한 시간을 포기하게 만들었지만, 부탁을 들어준 이후 상대방에게 감사의 표현을 듣고 나면 꽤나 큰 보람을 느꼈다. 삶에 있어 큰 욕구가 없었던 나에게 부탁이란 건, 어쩌면 큰 사명으로써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나를 찾고 불러준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부탁을 들어줬을 때의 돌아오는 감사의 표현. 이러한 것에서 나의 존재의 이유를 찾았었나 보다. 내가 누구인지, 그때는 잘 몰랐으니까.   


이런 내가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고,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조금 더 몰두하고 싶은 게 하나 생겼다. 바로, 글을 쓰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나의 생각을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누군가가 읽기 조금 더 편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은 나의 삶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나는 매 순간 내가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바뀌었다. 과거에는 '오늘 못하면 내일 해야지'처럼 처음 계획한대로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부족했지만, 요즘에는 '오늘이 아니면 안 돼'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글을 통해 내일이 되면 오늘 떠오른 생각들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태껏 내가 써온 글들은 '그 날'이 아니면 쓸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힘들었던 그 날. 피곤했던 그 날. 고민이 많아 어지럽던 그 날에도 나는 한 차례 숨을 고른 후 글을 썼다. 그렇게 이겨냈다. 퇴사 이후의 공백도, 두 번째 직장에서의 적응도, 재입사의 유혹도, 두 번째 퇴사에 대한 숱한 고심의 순간들도. 또한 노력했다 하여도 이전의 글들을 더욱 잘 쓸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잘 쓰기 위해 노력한 게 아니라, 솔직하기 위해 노력했으니까. 다시 보면 부끄러운 글들도 몇 있지만, 후회는 없다. 그때의 글들이 곧 나였기에.

    

타인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나이지만, 수다스럽고 싶을 때가 있다. 생각에 의해 걸러지지 않고 곧장 튀어나오는 말들은 세련되지 못하거니와, 상대방에게 상처나 주지 않으면 다행이다. 알고 있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의식하지 않은 채 수다스럽고 싶은 날이 있다. 나에게는 오늘이 그러한가 보다. 당장 만나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으므로, 혼자 하는 수다 또한 기록으로 남겨볼 요량이다. 혹시 아는가. 이 수다가 미래의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칠지. 그거야 물론 미래의 나만 알 수 있겠지만.


익명으로써 나의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삶의 평범한 순간들을 담아내고자 했던 지난 시간들에 감사함을 느끼며. 남아있는 오늘의 시간도 소중하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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