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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04. 2018

주저리주저리

누군가와 만나 수다를 떨고 싶은데. 가까이 사는 친구는 없고,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를 부르기엔 늦은 9시.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았다. 펜으로 뭐라도 끄적여볼까, 적었다 지웠다가를 여러 번. 푹푹 내어지는 한숨에 토요일이 맞나 싶다.


시간은 있는데 하고 싶은 게 없을 때가 있다. 무기력해지는 내가 느껴질 때면 핸드폰을 찾는다. 예전에 찍은 사진이나 카카오톡 프로필을 찾아보고, 인터넷에 있는 인기 검색어를 확인하고, 자주 하지 않는 SNS나 게임에 접속해본다. 9시 30분, 무기력을 덜고 공허함을 더한다. 뭐하지, 고민하다 다시 펜을 든다.  


토요일 근무를 시작했다. 매주 5시간,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일한다. 6일 동안 꼬박 출근해야 한다니, 없던 정마저 모두 떨어질 지경이다. 첫 시작인 오늘,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10시였다.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반겨주던 당직자. '불안해서요'라는 대답을 생략한 채 미소 지었다. 형식적인 인사에는 궁금이 묻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짬을 내어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피곤해서인지, 억울해서인지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대체로 출근하지 않은,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담당한 일 때문에 출근한 게 다인데. 부족한 탓에, 동료들을 쫓기 위해 주말을 포기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동료들은 집에서, 친구들을 만나,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쉬고 있겠지 하고, 비어있는 자리들을 보며 상상했다. 외로움이 밀려든다.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싶은데. 바쁘게 움직이는 당직자를 살피다, 입가에 맴돌던 말들을 꾸욱- 삼켰다.


인수인계를 위해 작년에 토요 업무를 담당했던 동료직원이 도착했다. 현장으로 출장을 가야 하는 만큼, 서울의 주말 도로를 감안하여 이동해야 했다. 시계는 1시 40분을 가리켰다. 나갈 준비를 마친 나는 의자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2시 30분까지 가야 하는데. 여유 있게 현장을 둘러보며 싶은데. 웃으며 아직은 이르다는 말을 반복하던 동료.


2시 22분. 들썩거리던 엉덩이가 제 자리를 찾기 전에 경적이 이어진다. 서울의 주말 도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좌석에 앉아있던 동료와 나는 경우의 수를 따지기 시작했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택시를 타느냐, 그대로 버스를 타고 가느냐 하는. 판단이 서질 않았다. 창밖에 택시가 보이지 않을뿐더러, 탄다고 해도 달라질 게 있을까 싶었다. 교차로 앞 사거리의 신호는 왜 이리 짧을까. 두근거리는 심장만큼, 빠르게 사라지는 초록불이 야속하기만 하다.


택시를 타기로 했다. 가까운 버스정류장에 내린 시간은 2시 28분, 기적을 바라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파를 헤치며 택시를 찾는데, 뒤에 있던 동료가 다급하게 말했다. 저기 줄 서 있는 데가 택시 타는 곳이라고. 보도를 횡단한 줄에 나를 더하며,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망했다'는 말만 되뇌었다. 줄이 반 정도 줄어들었을 때 동료는 나의 옷깃을 당기며, 저기 건너편에서 오는 택시를 타자고 제안했다. 달려오는 버스에 치일 정도로 정신없이 달려가 택시를 탔다. 목적지를 말하며 빨리 가달라고 부탁했다. 40분까지라도 도착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첫 만남이기도 하고 많이 늦은 게 아니니까 이해해 줄 거라 믿었다.  "거기가 어디예요?"라고 되묻던 기사님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문이 지나쳐왔던 교차로 앞 사거리만큼 막혔지만, 일단 역 근처로 가달라 했다.


역 근처에 도착하여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 와중에 현장에 왜 아무도 없냐는 전화도 한통 받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2시 45분. 먼저 와있던 절반 정도의 인원이 웃으며 반겨주었다. 다행이었다. 늦었다며 질책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머지 인원이 도착하는 걸 확인하고, 3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는 주현장업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출장 갔던 업체의 담당자의 말이 계속 생각났다.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이야기들로 나를 옥죄었다. 왜 이건 이렇게 밖에 안 되었냐는 둥, 보고 받은 인원과 오늘 방문한 인원이 다르다는 둥.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건물 밖으로 나오는 도중에도, 오늘 진행한 업무 자료는 언제 보내줄 거냐는 둥. 치사하다, 정말.


퇴근하는 길.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 계단을 기웃거리다, 멀리 돌아가는 버스 계단을 오르내리다, 엉겁결에 도착할 수 있었다. 5시 40분 즈음, 집에.


옮겨적고 나니 이리 우스운데, 뭐 그리 급하고 또 분했을까. 다행이지 싶다. 아무렇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다. 처음 해보는 업무에, 약속시간보다 늦을 뻔했고, 업체 담당자까지 쏘아붇이니 말이다. 긴장했고, 불안했으며 분노했던 나는 오늘의 이야기들을 그만 놓아주기로 했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후회해봐야 나만 괴로울 따름이다.


'다음번에 잘하면 되지'라고 혼잣말을 하며, 펜을 놓는다. 친한 친구와 대화를 나눈 듯한 여운이 남는다. 오후 11시 20분,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책상을 정리하고 침대에 눕는다. 불 꺼진 방, 천장에는 나의 하루가 떠다닌다. 내일 아침이면 희미해지겠지,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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