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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an 15. 2018

우울한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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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올랐다.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어 단말기에 찍었다. '감사합니다'라는 기계음이 흘러나온다. 기사님께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내부를 살핀다. 빈자리에 찾아가 앉는다. 내가 앉은 곳은 끝에서 두 번째 줄에 위치한 자리. 웅크려 있는 걸 좋아하는 까닭에, 나는 주로 이 자리에 앉는다. 창 밖으로 손을 흔든다. 다음 주말이 찾아오기까지 일주일 동안 못 볼 너이기에, 내가 기억하고 있은 가장 밝은 표정을 짓는다. 버스가 출발하고 열심히 손을 흔들던 너는 점점 사람들 속으로 사라진다.


핸드폰을 꺼내 새로 온 연락은 없는지 확인한다. 잠금을 풀며 품었던 기대감은 어릴 적 보았던 별똥별처럼 사라진다. 하루에도 몇 차례 울리지 않는 핸드폰이, 버스에 타고 자리에 앉는 사이에 달라졌을 리 없다. 이어폰을 낀다. 어떤 노래를 들을까 고민한다. 새로 나온 노래를 들을까, 아니면 귀에 익숙한 노래를 들을까. 혹은 가사가 없는 뉴에이지 음악을 들을까, 아니면. 고민 끝에 가수 김동률의 '사랑한다 말해도'를 검색한다. 며칠 전 나온 앨범에 수록된 이 곡은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유독 생각난다. 뭐랄까. 공허한 마음에 공허함을 더하지만, 끊을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할까. 재생 버튼을 누른다. 언제나 그렇듯 한 곡 반복으로 설정된 어플에서, 가수 김동률은 준비한 말들을 꺼내어 놓는다.


나는 네 앞에 서 있어

너는 생각에 또 잠겨 있네

함께 있어 더 외로운 나

어쩌다 이렇게.


일요일 밤의 거리는, 일찌감치 귀가한 사람들로 인해 한산하다. 지나치는 정류장들의 풍경은 출근길과 대조되어 더욱 초라해 보였다. 창 밖에 머물던 시선을 내부로 옮겼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에 골똘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연락이라도 하는 건지 웃음이 끊이질 않는 사람, 술에 취한 건지 창가에 몸을 기댄 채 미동조차 없는 사람, 통화하는 듯 입모양을 움직이는데 그 표정이 사뭇 심각한 사람까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뮤지컬의 한 장면처럼 내 사연을 들려주지 않는 이상, 눈길조차 받기 어려워 보였다.


나직이 들려주는 김동률의 이야기에, 용기 내어 생각했다. 애써 감춰두었던, 꺼내고 싶었던 우리의 이야기를.


언제부터였을까. 너의 마음속에는 어둠이 들어앉았다. 그 어둠은 밝았던 너의 모습을 하나 둘 지워나갔다. 어둠의 원인을 모르는 나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먼저 이야기해주길 기다렸다. 괜스레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건 아닐지, 혹여 어둠의 원인은 내가 아닐지 두려워하며.


오후 7시였다. 카페에 앉아 서로의 소리가 잠잠해져 가던 그 순간, 나는 커피를 마시는 척하며 너의 얼굴을 살폈다. 기운 없는 표정이 눈에 띄었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너에게 어떠한 존재일까. 세상에 둘 도 없는 단 한 명의 존재로서, 유일하게 모든 걸 터 놓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나는 너의 어둠을 보며 묻지 않고, 우려가 섞인 나의 눈동자에도 너는 침묵한다. 시간이 지나면 걷힐 어둠일까, 아니면 더욱 짙어질 어둠일까. 구분이 되지 않는 내 눈가에는 어느새 속상함이 차올랐다. 아무렇지 않은 듯 피곤하다는 말과 함께 두 손으로 감추었지만.


마냥 기다리기만 했던 건 아니다. 물어보려 했었다. 그러나, 말로 상처 주었던 기억들이 주춤거리며 입술을 잠갔다. 사려 깊다는 주변 평판과 다르게, 섣부른 말들은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내곤 했다. 알게 되었다. 미안하다는 말로 상처를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을. 상처는 이내 흉터로 남아 때때로 돌아보는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니까. 나는 괴로워하는 너를 볼 자신이 없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했던 말로 상처받았던 너를 볼 자신은 더욱 없다. 해결해주고 싶다. 그게 어렵다면 너의 말에 귀 기울이며 공감해주고 싶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떠나 오직 너의 편에 서서.


버스에서 내렸다. 생각이 많았던 탓인지 피로가 몰려왔다. 서둘러 집으로 이동했다. 정류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집. 나는 그 길에서 내일 해야 될 업무의 순서를 정리했다. 습관처럼 한 행동이었지만, 이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괴로워하는 너를 보고 나 또한 괴로운데. 고작 한다는 게 업무 생각이라니.


너의 어둠은 짙고 깊었다. 물리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밤이 되어 거리의 간판이 하나 둘 꺼지듯, 나 또한 어두워지고 있다. 너에게, 텃밭에 핀 유려한 꽃들보다 환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나는.


밤은 깊어만 가고 내일은 다가오지만, 나는 서성이고 있다. 미안한 마음뿐이다. 지금쯤, 집으로 돌아간 너의 방에는 어둠이 잦아들었겠지. 그래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이 시간, 나는 여전히 너를 생각하고 있다. 너를 믿는다. 만약 그 어둠이 나로 인해 비롯되었다 해도, 어둠이 잠식한 네 마음에 빛을 비추는 방법을 나에게 알려줄 거라, 나는 믿는다. 내가 사랑하는 너이니까.


나로 인해 밝아질, 너를 기대하고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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