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Nov 25. 2017

보름달 같은 초승달

"저기 저 보름달 좀 봐요"


동료가 말했다. 어라, 내가 보기에는 초승달인 것 같은데.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고 서둘러 정정하는 동료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을버스를 탈 수 있는, 도보로 15분의 거리를 자주 걷는다. 직장에 도착하기 위해 거처야만 하는 그 길은, 주로 출근하기 싫은 아침에 걸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다른 생각을 하며, 해야 될 일이 잔뜩 쌓였을 때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며.


연말이 다가올수록 야근이 잦아졌고, 피로는 쌓여갔다.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이 늦어짐에 따라, 아침을 걸으며 느꼈던 '살아있다는 감정'과 멀어져 갔다.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들을 제 걸음으로 지나치며, 사람들의 표정, 가게 입구, 날씨, 버스를 고루 살피던 나. 돌이켜보면, 아무렇지 않다 여기던 그 길에 온전한 내가 있었다. 누구의 시선도 아랑 곳 않는, 자유로운 내가.


하루 중, 기운이 넘치는 시간은 단연 아침이다. 그런 아침을 쫓기듯 보내고 나면, 마치 일 기계가 된 기분이 든다. 하나의 일을 끝내면, 또 다른 일이 시작되는 직장에서의 '나'가 끝나면, 되돌아온 '나'는 노곤한 상태가 되어 퇴근한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고민할 여유도, 기분 나빴던 일에 화낼 힘도 없다. 낯설지 않은, 어깨를 늘인 채 창 밖을 바라보는 익숙한 모습으로 버스 좌석에 앉는다.



"제가 큰 웃음도 드리고 좋네요"


야근을 마치고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아침이면 걸었던, 거리를 함께 걸었다. 동료 한 명이 시작한 보름달 소동에 하루 중 가장 큰 웃음을 지었다. 초승달 같던 나의 감정이 보름달처럼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어제 새벽, 갑작스러운 속 쓰림으로 인해 잠을 설쳤다. 아픈 속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끼도 먹지 못 했다. 그래서일까. 농담 아닌 농담이 되어버린 이야기에, 마감해야 될 일 때문에 아프다 말하지 못했던, 서러웠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출근하지 못한 오늘, 나는 보름달을 상상하며 미소 짓는다.


다음 날이 된, 오늘. 월차를 내고 집에서 쉬었다. 밀린 업무를 해치우듯, 자고 또 잤다. 꿈에서는 물건을 부수는 난폭한 모습으로, 그동안의 나를 보았다.


오래 잔 탓에 머리가 아파진 나는, 집 앞 카페에 들렀다. 카페에 오는 길,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았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래, 무슨 달인 지가 뭐 그리 중요할까.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되어 저리 환히 빛나고 있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 오늘의 나. 반가워, 내일의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