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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05. 2018

죄송하다는 말, 그 뒤에

성큼, 봄이 다가온 걸까. 밤의 거리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나무의 가지는 저리 앙상한데. 어디서 불어오는 걸까, 봄은.


꼬리 흔드는 강아지가 다가온다. 나는 반겨줄 기분이 아닌데, 해맑게 웃는 저 얼굴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니고 있던 괴로움 하나를 덜어낸다. 그래, 용케 알아봐 주었구나 하며.


자신의 입장에서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속 편할까 하고, 지나가던 바람에게 속삭인다. 말을 할 때에는 그 말로 인해 영향받을 수 있는 사람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눈 앞에 듣는 사람만 생각해선 곤란하다.


들었던 말을,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는 여러 번 고민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상처가 될 만한 내용은 없는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말이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듣고 싶은 대로 들으니까.


왜 그랬나요, 묻고 싶었다. 왜 나인 것처럼 말을 했는지, 짚고 싶었다. 생각했는데, 꺼낼 수 없었다. 상황은 벌어졌고, 남아있는 건 '죄송합니다'라는 말 뿐이었기 때문에.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귓가에 맴돌며, 머리로 가기도 하고 마음으로 가기도 한다. 같은 말이라도 언제는 화가 나고, 언제는 감사한 것처럼.


기억은 이따금씩 떠오른다. 잊혀질 즈음이면, 그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게 느껴진다.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가 보다, 나는.


떠나지 않는다. '죄송합니다'에 담겨있던, 꺼내지 못한 말들이 가슴을 두드린다. 아니라고,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괜찮다 하며, 빈 거리의 여운을 들이마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지도 풍성해지고, 새싹도 자라고, 고소한 흙냄새도 퍼지겠지. 고민 때문에, 봄을 놓치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겨울에 갇혀 헤매었던, 여름이 오고 지나간 봄을 알아차렸던. 작년의 나처럼.


괜찮다 하며, 위로한다. 걷자. 생각하지 말고. 적어도 이 곳에서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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