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Sep 09. 2018

더 이상 나를 속이지 않고

한 장의 그림을 상상했다. 까맣게 칠해진 그 그림에는 여러 사람들이 서 있었다. 발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모두 나와 마주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덧칠되어 있지 않았다. 머리카락도, 얼굴도, 옷도, 신발도 없이 배경보다 더 까맣게 사람들은 표현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있었다. 차렷 자세로 석상처럼 굳어있던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감싸 쥔 손과 목 사이에 틈이 있는 걸 보니 자해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고, 손가락 끝이 그림 밖 나를 향하는 걸 보니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목을 조이는 사람의 꿇려 있는 무릎이 무언가를 갈구한다. 말하는 것만 같다. 여기에 내가 있다고, 목을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마주 선 그들에게선 어떠한 관심도 느껴지지 않는다. 조르거나 말거나, 그들은 여전히 어두울 뿐이다.

그들은 누구일까. 내가 아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람들 중 일부 일까. 최근의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림을 해석하려 하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은, 타인의 기대로 수 없이 져 버렸던 진실된 마음의 내가 아닐까.

마음속에 사는, 진실된 나는 이야기했다. 힘이 들면 그만두어도 괜찮다고. 그만두는 게 공부든, 일이든,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것이든. 오죽 힘들었으면 포기하고 싶었겠냐고, 평소의 너를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나는 외면했다. 괜찮다고, 곧 나아질 거라고 읊조리며 바로 잡을 수 있었던 순간들 속의 나를 무시했다.

그렇게, 거짓말을 할 때마다 나는 한 명씩 죽여나갔다. 내 안의 나를, 진실된 나를. 죽어나간 '나'들은 '나'라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박제되었다. 그 시간을 살아가던 나에게. 머리카락과 얼굴과 옷과 신발을 잊고, 마음을 지워버린 채.

모여있는 과거의 '나'들은 오늘의 나를 본다. 말을 하지 않고, 표정 또한 없으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빼곡하게 공간을 채운, 셀 수 없이 많은 '나'의 존재는 되려 의미한다. 더 이상은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진실된 너의 삶을 살라고. 발 디딜 틈 없는 이곳에서 또 한 명의 내가 죽는다면, 등 떠밀린 '나'로 인해 목이 더욱 조여올 거라고.

나는 그곳으로 들어가 지난날의 나들을 안아주었다. 말없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전하며. 어둡던 '나'들은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왜 이제 찾아왔냐는 듯한 눈빛을 지으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안하다는 듯이, 이제 괜찮다는 말을 건네며.

그림 속 세상, 그곳은 가을의 청명한 하늘처럼 변해있었다. 까맣던 '나'들은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된 최근까지의 내 모습으로 변하여 손을 맞잡고 웃어 보였다. 목을 조여오던 나는 사라지고, 그곳에는 하나의 길이 생겼다. 포장되지 않은, 부드러운 모래알로 이루어진, 걷는 상상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길이. 신고 있던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맨발이 되어 나는 그 길을 걸어본다. 한 걸음씩, 지난날의 '나'가 환하게 웃으며 응원해주는 그곳으로.

더 이상 우울을 곱씹으며 주저하지 말자. 하면 되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누구의 기대도 떠올리지 않으며.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거나 미래의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 눈이 머무는, 발길이 향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곳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눈을 감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