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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y 09. 2018

눈을 감으면

좋아하는 노래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한 번은 음이 기억이나 허밍으로 아이폰의 시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잘 못 알아듣겠다던 그녀의 음성으로 보아 나는 음치가 틀림없다. '뭐였지'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다가도 떠오르는 건 대부분 '불현듯'이었다.


오늘 아침, 나는 하나의 음이 생각났다. 그러나 제목이 기억나지 않았다. 유일한 단서는 '선명해져'라는 가사의 일부였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수십 가지의 노래가 나왔다. 하나씩 다 들어볼 자신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나중에 찾아야지' 하며 출근길에 속도를 더했다.


퇴근길, 좋아하는 길을 걷기로 했다. 그래 봐야 집으로 가는 길에 인적이 드문 공원이지만, 끝에 다다를 때면 무기력했던 조직 내에서의 나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원에 들어서기 전 신호등 앞에 섰다. 노래를 들어볼까 하고 이어폰을 꺼냈다. 핸드폰에 연결하고 귀에 꼽은 뒤 노래 어플을 킬 때, 아침에 찾지 못했던 노래가 생각났다. 여전히, '선명해져'라는 단서뿐이었지만.


'무엇이 선명해지는 걸까' 되뇌다 초록불로 바뀌기 전 '니가'라는 단어가 새롭게 떠올랐다. 재빠르게 '선명해져 니가'를 검색하니 아무런 노래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이 얼굴에 드러날 찰나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선명해져 네가'라고 검색한 그곳에 단 하나의 음악이 검색되었다.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해져 네가
참아봐도 또 참아봐도 해도 견딜 수 없어
눈을 감으면 네가 너무 많아
지워봐도 또 지워봐도 지울 수 없어 너를

원 모어 찬스 - 눈을 감으면 -


공원 출구로 나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이 노래를 들었다. 오랜만에 듣게 되어 반갑기도 하고, 점차 고조되는 음이 경쾌해서 좋았다. 흥얼거리며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잃고, 집에서 해야 될 일들을 잊을 수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 앞에 몰래 두고 간 선물처럼 느껴졌다. 오늘, 이 노래는.


눈을 감으면 네가 선명해진다는 가삿말처럼 괜스레 여러 사람들이 생각났고, 또 보고 싶었다. 가족, 친구, 연인뿐만 아니라 나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지금 만나면 일상의 찌들어있는 내가 아닌 진실된 나를 보여줄 수 있을 텐데 하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을 상상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태어난 이상 관계 속에 살아가야 한다. 기왕 만나야 될 사람이었다면,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게 좋지 않을까.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에게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지만, '좋은 사람이었지' 하고 우연히 떠올린 그 이름에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았으면 한다.


늦은 밤, 누군가 나를 생각해줄까. 만약 생각한다면 그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듣게 된 좋아하는 노래 안에서 맺었던 여러 인연들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 나처럼.


기분이 좋아지다 보니 글이 길어진 것 같다. 무슨 내용으로 썼는지, 흐름에 일관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침대에 누워있는 내가 평소와는 다르게 감았던 눈을 몇 번이나 뜨는 걸 보니,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있는 거 같지만.


내일 하루도 나, 그리고 나와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평온하였으면 좋겠다. 이 밤, 오래도록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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