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Oct 16. 2018

아파트 복도를 걷다가

3년 전, 우리 가족은 복도식 아파트로 이사 왔다. 나를 임신하시고 이사 갔던 빌라에서 32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았던 부모님은, 7층이 된 우리 집을 엘리베이터로 오를 때면 여전히 신기해하곤 하신다. 이전 집과 비교했을 때 편리한 게 참 많다. 동마다 계시는 경비원 분들께서 여러 편의를 봐주시고, 편의점이나 세탁소와 같은 시설도 가깝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출, 퇴근할 때에는 이웃이 많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지곤 하는데, 정작 나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아직 모르고 있다.  


우리 집 옆 703호. 할머니와 중년의 딸이 함께 사는 것 같은데, 추측일 뿐 어떠한 관계인지 알지 못한다. 또 다른 옆 705호. 40대로 보이는 남녀가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에게 자녀가 있는지, 관계가 부부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들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이곳에서 살게 된 걸까. 우리 가족은 직장에서 희망퇴직을 하신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자영업을 전전하며 오랜 기간 모은 돈으로 온 건데. 옆집들, 가장 가까운 이웃의 사연은 어떠할까. 최근 일어난 하나의 사건 때문에 나는 더욱 궁금해졌다.


며칠 전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가기 위해 7층 복도를 걸어가다가 천장에서 거미줄을 발견했다. 허술하게 걸쳐져 있던 거미줄은 누가 보아도 짓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것이었다. 관찰하고 있던 그 짧은 순간에도 거미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 곳에 정착한 걸까. 만약 당일이라면, 고개를 들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았기에 이웃들도 몰랐을 것이다. 오래 고민할 겨를 없이, 거미가 정수리로 내려오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쏜살같이 집으로 들어갔다.


그다음 날, 비슷한 시간이었다. 복도에는 인적이 없었으며 전등만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모서리를 돌아 703호 앞을 지나가려 할 때 어제보다 커진, 번듯한 거미집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 머리에 닿을 만큼의 크기는 아니었지만,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닿을 것 같았다. 의아했다. 이 정도라면 분명 같은 복도에 사는 사람들 눈에도 띄었을 텐데. 지친 몸을 이끌고 급히 현관으로 들어오는 부모님처럼 여유가 없는 까닭에 거미집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걸까. 집으로 들어온 나는 한층 더 분주해진 것 같은 거미를 생각했다. 거미가 무사히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나는 계속 피해 주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철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거미가 다른 곳에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거미집을 걷어내야 하는 걸까.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며칠.  커져가던 거미집은 자녀로 보이는 새 식수를 맞이했고, 허리를 구부리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을 정도의 크기로 변해버렸다. 조금 더 시간을 두면 거미집으로 인해 복도를 지나갈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비가 오는 날이었으므로 나는 우산으로 거미집의 일부를 제거했다. 한두 번 손짓에 힘 없이 무너지는 거머 집, 소스라치게 놀라며 천장으로 도망치던 거미 가족.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밤새 뒤척였다. 진작에 다른 곳에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며. 오늘은 거미집을 헤집고 지나쳤지만, 다시 지을 그들의 보금자리를 나는 헤집을 수 있을까 하며. 


어제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복도에 들어서는데 거미집이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이웃들의 대처와 깔끔한 솜씨로 보아 경비 아저씨가 정리하신 게 틀림없었다. 허전하게 변한 그 공간을 보며, 다음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일찍 일러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집을 짓는 수고스러움을 덜고, 안전하고 아득한 곳에 보금자리를 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이웃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보았거나, 못 보았더라도 꼿꼿한 자세로는 머리카락에 닿았을 거미줄로 천장을 쳐다보게 되었을 것이다. 징그러워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 걸까, 아니면 복도를 지나치는 다른 누군가가 없앨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라도 있었던 걸까. 고민 끝에, 어쩌면 동질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은 지 30년도 더 된,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우리 아파트는 서울 중심가에 있는 다른 아파트들에 비해 저렴하다. 휴가를 내고 낮 시간에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면 연로한 분들이 돌아다니는 걸 자주 본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자녀들을 독립시킨 분들이 조용하게 살 곳을 찾던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 같다.     


보았다. 맨 몸으로 한 올씩, 거미줄을 내리며 집을 짓던 거미가 제법 번듯한 집 안에 가족을 일구던 모습을. 그 과정에서 내가 우산으로 훼방을 놓기도 하고, 다른 이웃이 내가 모르는 행동을 가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기에 혐오스러운 거미가 아파트 복도에 집을 지으며 며칠씩 생활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의 삶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태어나고 자라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때로는 불안하고 괴롭지만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와 비슷했으니까. 


거미들이 사라지고 거미집이 걷힌, 우리 집이 있는 서울 변두리 아파트의 7층 복도는 여전히 조용하다. 703호에 거주하는 분들이 모녀 관계가 맞는지, 705호에 40대 남녀가 사는 게 맞는지 혹은 정확한 세대원은 몇 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거미집 소동이 있고 나서 일면식도 없는 그들과 어째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수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보다,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가깝고도 먼 우리 옆 집 이웃들과 친해진다면 그들의 삶을 듣고 싶다. 함께 거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부터 그때의 그 거미들과 거미집을 보았었는지 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떠올라라, 가라앉는 진실된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