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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Dec 24. 2018

여행을 떠나듯 글을 쓰자

이따금씩 진실된 내가 궁금할 때면 

아마, 모르실 거예요. 펜을 들기까지 저는 늘 두려움이 앞서요. 시작되는 이 글을 잘 끝맺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요. 예상보다 어려운 주제라서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거나, 갑작스레 마음이 바뀌어 쓰기 싫어지면 어떡해야 될까요. 더군다나 시간도 제법 투자했고, 쓴 내용도 상당하다면요. 상상만으로도 손에 진한 땀이 새어 나오네요.


인생에는 완벽한 계획이 없다고들 하지요. 적당히 계획하고, 실행하며 수정해나가야 된다고 해요. 글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써야겠다'라는 계획을 세우고 첫 문장으로 들어가지만, 쓰다 보면 생각이 바뀌어요. 더 쓰거나 덜 써야 될 내용이 보이지요. 하지만 정해진 답이 없는 글쓰기는 겁이 나요. 불완전한 나를 믿으며 한 줄씩 써 나가야 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만큼의 무게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생각을 글로서 표현한다는 거는요. 잘못된 정보를 적는다면 비판당할 테고, 글이 주장하는 논리에서  벗어나거나 설득력이 없다면 사람들은 외면할 거예요. 하루에도, 아니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글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공개되고 있어요. 그중에는 사람들의 마음에 닿아 오래도록 기억되는 글이 있고, 곧이어 올라오는 글들에 밀려 사라지는 글도 있지요. 이러한 상황들을 떠올려보면 글을 쓴다는 행위의 무게를 새삼 실감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요


이전에 올렸던 글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요. 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곁을 지나가지만 아무도 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고, 어느새 커진 그들의 존재감 때문에 저 스스로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어요. 괴로움이 극에 달했던 그때는 첫 퇴사 후의 공백기였어요. 저는 내일의 계획이 없는데, 친구들은 번듯한 직장에서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해 가는 거 같고, 부모님이 품은 기대가 소리 없이 가슴에 와 닿을 때면 도망가고 싶었어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정착하여 과거의 나를 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매일 상상했어요. 하지만 도망칠 수 없었지요. 포기해야 되는 게 많았거든요. 다시 이 정도의 직업을 갖지 못한다면, 능력 없는 나를 보며 사람들이 떠나간다면, 지난 결정을 뒤돌아보며 후회한다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은 저의 발목을 잡았어요. 그렇게, 상상은 점차 글로써 표현되었고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에게 위로가 되어주었지요.



처음 인터넷 공간에 하나, 둘 써 올린 글들은 비록 읽는 사람은 없었지만 괜찮았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제가 방문하며 읽었거든요. 도서관에서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면서도,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 위해 침대 위에서 뒤척이면서도. 당시에는 어찌나 잘 쓴 것 같던지. 그때에는 제 글이 좋아서 다른 사람들의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글은 하나의 이야기예요. 제가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이건 제 이야기가 되겠군요.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화자가 되는 '나' 자신이에요. '나'가 마음먹기에 따라 글은 판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여행으로 처음 방문한 곳에서 자신의 차로 내비게이션 없이 다녀야 한다면 어떠할까요. 과거라면 여행지도나 이정표,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찾아갔을 거예요. 하지만 어떠한 방법이라도 조언할 뿐, 끝까지 안내해주지 않아요. 결국은 스스로가 찾아가야 하지요.


우리의 삶은 운전과 비슷해요.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삶의 목표라고 생각해보세요. 가끔은 내비게이션 같은 존재가 나아갈 길을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길 끝에 도달할 목적지까지 도요. 그럴 수만 있다면 미래의 불안함이 가시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내 따분하게 느껴질 거예요.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도달할 목적지는 정해져 있고, 다른 경로를 선택할지언정 예측 가능한 결과만을 얻게 되기 때문이에요. 불안하지만, 다가오는 내일이 두렵지만 오늘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 무엇도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삶이어서 인가 봐요.
('내일의 방향이 모호한 그대에게' 중에서)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이 순간, 여행을 떠나고 있어요. 이 여행 속에서 저는 무엇이라도 될 수 있어요. 현실에서의 답답함을 벗어던지고 마음껏 뛰어놀거나, 광활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어요. 사뿐히 내딛는 걸음들을 가로막는 건 오직 제 생각뿐이에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혹시나'하고 떠오르는 형체 없는 두려움이요.



글의 완성을 겁내지 않고, 쓰는 것 자체에 기쁨을 느끼기 시작할 즈음부터 새로운 두려움이 찾아왔어요. 우연한 기회로 저의 글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었어요. 늘어나는 조회수가 그 관심을 증명했지요. 그때부터였어요. 글을 쓰면서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시기는요.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은 펜을 더뎌지게 만들더라고요. 놓았다가 들었다가를 반복하기도 하고, 펜 대신에 머리카락을 움켜쥐는 날도 있었지요. '어떻게 하면 진솔하게 내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을까?' 하던 생각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주목을 더욱 받을 수 있을까'로 바뀌게 되었어요. 글을 쓰며 처음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은 시작한 글을 끝맺지 못할까 봐 하는 두려움이었는데, 그 두려움은 점차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번지게 되었어요. 또한, 언제부터인가 지난 글보다 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게 제가 글을 쓰는 이유가 되어버리고 말았지요.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데 나쁘다는 뜻이 아니에요. 다만, 자신이 진실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보는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수정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나 다름없어요. 나 스스로를 속이는 행동이지요. 마음은 바다로 나아가 발장구도 치고 바닷물을 끼얹기도 하며 놀고 싶지만, 사람들이 눈과 관련된 소재를 좋아한다고 하여 '눈 내리는 곳에서의 나'를 쓴다고 상상해보세요. 그곳에서의 나는 얼마나 춥고 괴로울까요. 내가 만들어낸 나조차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다면 말이에요. 글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기록이라지만, 그 기록이 내 마음과 동떨어져 있다면 다시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



오늘에 이르러 저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써가고 있어요. 살기 위해 써 내려가던 아픈 시간들을 잊고, 즐겁게 한 글자씩 채워나가고 있지요.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으면 여행을 준비하듯, 어떠한 단어들로 글을 채워나갈지 마음의 짐을 꾸려요. 그 속에서의 저는 현실에서처럼 상사의 의견에 쉬이 굽히지도 않고, 타인의 시선에도 움츠러드는 일이 없으며, 오직 생각하고 느끼는 그대로 행동하지요. 글의 완성이나 사람들에게 공개된다는 두려움도 일지만, 그럼에도 다시금 여행을 준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제가 아는, 가장 나다운 '나'는 글 속에 있어요. 여러분의 진실된 모습은 무엇을 통해 드러나나요. 대화를 하실 때인가요, 기도를 드리실 때인가요, 아니면 그림을 그리실 때인가요. 나를 표현하는 마땅한 도구가 없고 일상에서의 '나'에서 답답함을 느끼신다면, 글을 한 번 써보는 건 어떠할까요. 글을 쓰며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거예요. 가로등이 미치지 않는 어두운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름달에 큰 울림을 느끼듯, 글 속에서의 모습은 여러분의 삶에 새롭고 특별한 이정표가 되어줄 거예요.



어떠한 형태로도 좋아요. 지금 바로, 저와 함께 내디뎌 보시겠나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첫걸음을요. 준비되셨다면 노트를 준비하시고 펜을 들어주세요. 그리고 들려주세요. 여러분의 진짜 이야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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