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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25. 2019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문득,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도망칠까. 길게 여행이라도 떠나볼까 하고, 내 일정을 확인해 보았다. 각 기업의 이력서 마감기한이 달력에 빽빽하게 끼인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1박 2일처럼 단기간으로 여행을 떠나자니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괴로움의 과정이 상상된다.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가볼까. 야간대학원 수업은 평일 이틀뿐이므로, 면접이 예정되지 않은 날을 잡아서 가면 된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내주는 과제며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예습해야 되는 범위는, 백수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어떠한 마음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온 것인데. 그 기대를 저버리고 쉰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백수에게는 24시간이 온전하게 주어진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완벽한 준비란 없다. 적당한 시기도 없다. 운도 어느 정도 따라야 한다. 


만약 특정 기업에 취업하는 걸 준비한다고 하자. 그 기업이 요구하는 자격에 따라 준비한다고 해도 반드시 붙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일반적인 합격후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후기다. 어떤 부분에서 어필이 되었는지 우리는 단지 분석해볼 뿐이며, 변수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게 낭비가 없으면서도 현명한 것일까. 계획을 세웠다가도 불현듯이 발생하는 일 때문에 허투루 보냈다고 생각되는 날들이 많은데.


공부를 하다가, 과제를 하다가, 취업 공고를 보다가, 이력서를 쓰다가 하고 싶을 것들을 잊는다. 내가 진실되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직장에서 씌운 굴레를 어렵게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나 스스로 삶에 굴레를 씌운 것은 아닐까. 기대했던 퇴사 이후의 내 모습은, 적어도 몇 일간의 쉼도 없이 다가오는 과업들을 힘껏 해결해 나가는 건 아니었는데.


가끔씩, 카페에서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대방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두 눈을 감는다. 오감으로 쫓는 일상에 잠시나마 쉼표를 찍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1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세상은 고요해지고 차분한 숨소리만 가득해진다. 


어제 친구와 만나, 친구가 화장실을 간 사이에 나는 두 눈을 감았다. 1분이 지나고 카페 안이 온통 내 숨소리로 가득하자 마음에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 보였다. 불안함, 두려움, 괴로움, 부담감 등 부정적인 감정들이 떠 다니는 게 느껴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분명 퇴사를 결심할 때만 해도 기대감, 즐거움, 뿌듯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이 앞섰는데. 


퇴사를 고민하던 시기와 비슷해진 나는, 소중한 누군가를 바라보듯 나를 살폈다. 꽃샘추위가 찾아와 미세먼지가 사라진 하늘처럼, 마음이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랬구나. 지난 3년 동안 나는 전 직장에서 받아온 상처를 돌볼 여유도 없이, 또다시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솔직하게 살자고 새해 목표에도 적어 놓았건만, 나는 32살이라는, 경력을 포기했다는, 대학원에 입학하였다는 핑계로 외면하였다. 괴로워할 걸 알면서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 며칠이든,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 없이 변화된 내 모습을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켜보고 싶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너는 할 수 있다' 라며 포옹해 주었다. 삶에서 그 어떤 때보다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풍요로운 날들이 될 거라는 마음을 담아 눈빛을 보내주기도 하였다.


몇 분이 지났을까. 친구가 돌아오고 나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생각은 곧 행동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나의 진실된 마음과 만났으니까. 보았으니까. 숨 가쁘게 작성하던 이력서도, 머리를 뜯어가며 보던 전공 서적도, 언뜻 보이는 모니터 속 슬픈 얼굴을 뒤로하고 작성하던 과제도 잠시 미루고자 한다. 


세상 그 무엇보다, 눈 앞의 금은보화나 일확천금의 기회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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