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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28. 2019

인생에서 유예기간이 있다면

"수호야, 그렇게 먹다가 체하겠다"


어렸을 적, 나는 식탐이 많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식탁 위의 전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밥을 먹으면 어디에서나 먼저 수저를 들고, 모두가 내려놓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음식을 물리치는 속도 또한 가장 빨랐다. 오죽했으면 밥을 먹을 때마다 어머니께서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라고, 그러다 체하겠다고 말씀하셨을까.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마른 체형을 유지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며 살을 뺏기 때문이다. 다시 살이 찌는 게 두려워 밤이 늦으면 밥을 먹지 않았고, 군것질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의 통통한 모습은 사라지고, 체형적으로 마른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불리며 12년을 살아가고 있다.


요 근래에 나는 끼니때마다 식사를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백수가 되었으니 자기 관리가 곧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득이한 경우도 있지만, 직장에서는 아프면 대부분 월차를 쓴다. 그러나 백수에게 아픔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배가 고팠다. 마르게 된 이후부터는 줄곧 식사조절도 하고, 시간도 조정하며 알맞게 먹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눈을 뜨자마자 먹을만한 걸 찾기 시작했다. 과자도 먹고, 우유도 먹고, 배가 부르는구나 싶었는데,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냉장고를 뒤적거리는 나를 의식했다. 점심시간을 늦춰야겠다는 생각도 허사였다. 아침에 먹은 게 아직 소화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는 나를 의식했다.


갑작스러운 변화를 희한하게 느낀 나는, 요즈음의 일상을 되돌아보았다. 일어나서, 도서관에 가거나 집에서 과제를 하고, 대학원에 가거나 구직공고를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는, 덧붙이자면 중간에 식사를 세 번 하는 게 전부이다. 이제 2주 차로 접어든 생활패턴인데, 달라진 게 있다면 지난 주보다 공부에 집중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으면 멍해지는 나를 느낀다. 분명 한 페이지를 다 읽었는데, 기억나는 건 소제목 밖에 없다. 지난 주만 해도 오케스트라가 협연을 하듯, 하나의 내용을 보면 그것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가 내 안에서 줄줄이 섞여 나왔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상담을 공부하는 어엿한 예비 상담심리사로서 내 상황을 분석해 보고자 했다. 잔뜩 심각한 척을 하며 고민해 보아도, 이제 1학기에 다니는 나에게 떠오르는 건 "마음의 병이다" 하는 추상적인 결론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손자들에게 주기 위해 포장하고 남은, 어머니께서 만드신 유부초밥을 이른 저녁으로 먹으며, 지금의 상황과 어렸을 적 폭식을 하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허겁지겁 유부초밥을 먹던 나. 공허한 눈으로 텔레비전의 화면을 좇던 나에게, 탱탱하게 살이 오른 얼굴의 키 작은 나는 말했다.


많이 외롭니?


수저를 내려놓은 나는, 아무런 대답을 생각하지 못한 채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감정 표현이 서투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화가 나도 좀처럼 화를 내지 못하고, 기뻐도 기쁜 마음을 잘 드러내지 못했다.


알맹이가 없이, 껍데기 같은 모습으로 상대방의 반응을 담아가며 살았다. 눈 앞의 사람이 좋으면 나도 좋은 거고, 나쁘면 나도 나쁘다고 느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그제야 나는, 토할 때까지 먹곤 했던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외로웠었구나. 속에 담긴 감정들을 털어놓지 못해 많이 외로웠겠구나 하고, 닿을지 모르는 어린 시절 나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탄다. 그래서 관계를 통해 나의 존재에 대해 자주 확인하는 편이다. 하지만 삶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담금질이라는 표현이 있다. 고온으로 열처리한 금속 재료를 물이나 기름 속에 담가 식히는 걸 뜻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단단하고 튼튼한 금속으로써, 이전과는 다르게 눈이 부신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담금질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3년 동안 전 직장에서 근무하며 받았던 상처들은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다니던 직장을 포기하고, 이직을 준비하며, 대학원을 다니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생각 때문에, 상처에 연고를 바르지 않고 내달렸고, 내달리라고 끊임없이 외쳤다.


그토록 바라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는 인생의 유예기간이 찾아왔다. 현재는 대학원만 다니고 있으므로 내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 친구들과 만나 실컷 놀 수도 있고, 좋아하는 영화를 하루 종일 볼 수도 있고, 풍경이 아름다운 공원을 찾아다니며 걸을 수도 있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옳지 않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을 말이다.


외롭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음식을 먹던 어린 나는, 늦었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공부와 취업준비를 하는 어른이 된 나에게 일러주었다. 외로운 건 외로운 거라고. 외로운 걸 애써 참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연락을 걸어 만나도 괜찮다고. 그리고 만나게 된 누군가에게 말해도 된다고. 억누르려고 했던 감정, 외로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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