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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Dec 01. 2019

차가워진 전단지를 받으며

역 출구에는 전단지를 나누어주시는 많은 분들이 서 계신다. 청년에서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더 많은 전단지가 이동하는 사람들을 반긴다. 전단지를 전하는 손들 또한 분주해진다.


전단지를 받았으면 꼭 읽어보는 편이다. 무엇을 알리고 싶은지 앞뒷 면을 꼼꼼히 살펴본다. 반면에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면 고개를 숙이며 사양한다. 양 손에 짐이 들려 있어서 받을 여유가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손을 내밀며 전단지를 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뿌리치기 어렵다. 가게의 사장님일까,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것일까. 연령대로 예측해 볼 수는 있지만 확실치 않다.


만약 사장님이라면 전단지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어서 장사를 기운 내서 하실 수 있지는 않을까. 아르바이트를 하는 분이라면 전단지에 유효한 대상층이 관심을 가져주어서, 더 용기 내서 나누어 주시지는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읽고 난 뒤에 인근 쓰레기통에다가 곧바로 버리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지나가던 길에 구겨진 전단지를 발견하고 상심하시지는 않을까 주머니에 넣어둔다. 이제는 색 바랜 전단지가 주머니에서 나오는 상황이 낯설지 않다.


한양대 역을 오르다가 등굣길 학생들을 상대로 전단지를 주시는 할머니를 보았다. 통로의 한가운데 서서 쏟아지는 학생들에게 좌우로 전단지를 전하는 손은 유독 바빠 보였다. 나 또한 그 길로 들어서며 할머니께서 주시는 전단지를 받았다.  


전단지가 차다. 할머니의 손은 얼마나 더 차가울까. 할머니께서는 전단지를 전달해야만 생계를 유지하실 수 있는 분이실까. 아니면, 소일거리를 위해 입김이 선명해지는 날씨에도 맨 손으로 전단지 다발을 쥐신 것일까.


전단지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사람들에게 "받아주세요"라고 말할 의무도, 이유도 없다. 받는 행동이 더 많은 전단지들을 거리에서 배회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단지를 받으며 얼음장이 되었을 할머니의 손을 꼭- 하고 잡아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온기였을, 그 손을 녹여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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