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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un 24. 2021

달빛에 이끌리는 밤, 나의 소리

가슴이 답답한 날이었어. 불안했거든. 준비하던 시험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 해야 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들이 많더라고. 요즘 마감이 다가오는 일들이 늘어갔어. 하나의 일이 끝나도 기쁘지 않은 이유는 또 다른 일이 시작되기 때문이었어. 일과 일의 연속. 나는 그렇게 지쳐갔나 봐.


스터디 카페에 앉아 공부하는데 눈물이 차오르더라고. 창문으로 고깃집이 보였거든. 가게 안에서 어울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어. 정확하게는 그 사람들과 어울리는 순간이었어. 마음이 가는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게 그토록 행복한 일인지 그동안은 몰랐어. 어울릴 때에도 집에 가서 해야 될 일이나, 내일 출근해서 해야 될 일을 자주 걱정했거든. 서로의 어깨너머로 스리슬쩍 던지는 농담에 웃음이 퍼지는 시간은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더라고. 하루가 지날수록 실감하고 있어.


짐을 싸들고 나왔어. 도저히 공부가 되지 않더라고. 시험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고. 더 해야 한다고. 나중에 분명 후회할 거라고 마음속으로 크게 외쳐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 방법이 없었어. 집으로 갈 수밖에. 가방을 방 안에 두고, 일주일 동안 하지 못했던 산책을 시작했어. 출발은 그리 즐겁지 않았어. 호흡을 잃었거든. 숨이 원하는 대로 쉬어지지 않았어. 그저 가빠올 뿐이었지. 많이 걷지도, 빠르게 걷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홍제 초등학교를 지나 홍제천으로 접어드는 길에서 우연히 하늘을 보았어. 달이 보이더라고. 근데 그 달이 선명하다 못해, 옆에 있던 가로등 불빛보다 훨씬 밝더라고. 순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어. 영화 속 한 장면 같기도 하고. 문득, 저 달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어. 시험이고 뭐고, 달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니까, 그때부터는 말릴 수 없더라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개미 마을을 선택했어. 내가 서 있던 곳에서 가깝기도 하고 개미마을 꼭대기가 동네에서 높은 편이거든. 오르는 길은 어둑했지만 개이치 않았어. 설레었거든. 달을 보겠다는 목표가 생겼으니까. 호흡이 더욱 가빠 오더라고. 불안함이 커질수록 호흡은 통제를 잃으니까들쭉날쭉하는 호흡을 느끼면서도 달이 보이면 사진을 찍어 사람들에게 자랑하겠다는, 귀여운 생각을 하기도 했어. 뭐랄까. 오늘의 달은 나만 발견한 것 같았거든. '동네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 수도 있겠다는, 허황된 생각을 하며 걸음을 재촉했어.


높긴 높더라고.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어. 꼭대기까지 올랐는데 달은 보이지 않더라고. 눈앞에 보이던 산을 타면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그때부터는 달이 아니라 내일모레 답안지를 마킹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에 직면해야 될 것 같았어. 허탈한 마음으로 길을 내려왔어. 연체동물처럼 팔을 휘저으며 내려오는데 땀이 나는 게 느껴지더라고. 앉아서 흘리는 땀은 가끔 있었는데, 걸으며 흘리는 땀은 오랜만이었어. 발바닥에서 열이 오르기도 하고, 등에서 땀이 맺히기도 하고, 길어진 머리가 답답하게 느껴지면서도, 개운하더라. 상쾌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려나. 그때부터 호흡이 가라앉기 시작하더라고. 이상했어. 오르막길을 걸을 때가 더 힘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 내려가는 길이 유독 힘들게 느껴지더라고.


달을 보기 위해 다른 곳을 오를까 하다가 홍제천으로 돌아왔어. 달이 보이는 공터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지. 멀찍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달은 참 예쁘더라. 만약, 개미 마을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달이 지금처럼 예쁘지는 않았을 것 같아. 물론, 아까도 근사했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 '나의 웃음이 더해졌으니까. 나를 웃게 만드니까.' 마음이 중요한가 봐, 정말. 집으로 돌아가 시험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거든. 신기해. 요새 친구들과 하늘에 대한 얘기를 자주 나누었어.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없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지. 그때의 대화들을 돌이켜보면 그 여유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뜻하는 거였던 것 같아. 눈앞에 벌어진 일에, 그 일을 생각하는 우리에게 여유를 갖는다는 건, 어른들의 잔소리를 따르는 일보다 어려웠으니까.

 

불안할 때, 하늘을 올려다보아야겠어. 마법 같은 일이 펼쳐질 테니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 불안감이 고개를 아래로, 아래로 힘껏 누르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려다보려고 해. 고개를 들기 위해 목을 부들부들 떨어야 될 지라도오늘은 사실 내 생일인데 처음으로 웃고 있거든.   


Image by spiriterro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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