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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04. 2019

아리송한 하루

3월이 되고 첫 휴가를 맞았다. 퇴사를 2주 앞둔 나는 예비 취업준비생이자 백수이다. 두 곳에 이력서를 쓰고 면접까지 갔으나 떨어진 것에 대해 좌절 없이,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오늘도 구직사이트에 들어가 채용공고를 확인하며 내 스펙에 대입해 보았다. 턱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내 이력 때문에 넘기고 넘긴 페이지가 끝에 다다르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학원 전공 서적을 폈다. 폈는데,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넘어가기 위해 땀에 젖은 페이지를 만지작 거리던 나는, 어차피 내일부터 학기가 시작된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잠을 청했다. 


퇴사를 하더라도 출근할 때의 생활습관을 유지한다던 다짐은 잊혔다. 기어코 잔 잠으로 낮이 되어서야 일과가 시작됐다. 꼬여도 뭐 이렇게 꼬이는지. 그렇다고 점심을 안 먹을 수도 없으니, 나는 어제 먹다 남은 양념치킨을 데워먹었다. 다시 펼친 전공서적에 눈이 핑 도는 걸 느끼며 책상 주변에 있던 아무 책이나 손에 집었다. 그런데 아무 책이나 집은 탓이었을까. 도리어 머리가 아파진 나는 책 읽기를 포기하고 인터넷 강의를 틀었다.


흔한 인문학 강의를 들으며 공부해볼 요량이었다.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듯싶었다. 여러 사이트를 찾아보다가 고른 동영상의 주제는 행복이었다. 40분 남짓한 영상이었기 때문에 틀었는데,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거실에 나가 괜스레 어머니께 말을 걸기도 하고, 화장실도 들락날락하며 당최 행복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이대로 나의 하루를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여 들른 동네 서점. 꼭 사고 싶었던 책이 있었으나 바뀐 도서 위치에 찾아 헤매기를 수십 분. 차마 물어볼 용기는 없고 작기만 한 서점을 팽이 돌듯 다니다가 고른 책은, 오늘의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독서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잔뜩 의욕이 들었으므로 곧장 카페에 들러 책을 읽었다. 필통에서 몇 개 없는 볼펜 중 하나를 꺼내, 입구에 침을 발라가며 밑줄을 긋고 필기를 했다.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에 다급해진 나는 누군가에게 쫓기듯 완독 했다. 


얇은 책이었기에,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카페에서 읽은 후 집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세 시간. 뭔가 해냈다는 마음에 우쭐해져 비빔면을 끓여먹고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오늘 무엇을 해낸 걸까. 무엇을 하긴 한 걸까. 많이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한 것 같기도 하다. 


설마, 내일도 오늘 같은 날이 반복되는 건 아닐지 불안하다. 이대로라면 별로 바뀌지 않을 것 같은데. 걱정되면서도 웃기다. 이게 나구나 싶다. 케이지 안에서 생활하는, 톱밥 위에서 먹이를 먹고 쳇바퀴 도는 햄스터의 일상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아니다. 달이 떠 있는 하늘에 태양은 다시 뜰 테다. 비록 오늘은 실패했지만, 나는 더욱 치밀한 내일을 살 것이다. 오늘의 나에게 아쉬운 것들을 정리하여 부족하지 않은 내일을 보내기 위해 준비해야겠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물어도, 오늘의 나는 알 수 없다. 늦은 밤, 업무를 할 때 습관처럼 중얼거리던 말을 하며 이 시간을 마무리해야겠다. 


오늘의 일은 내일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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