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밝은 밤, 양계장의 닭을 생각하며.
군대 시절 나는 조교였다. 독특하게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부사관 조교. 전북 익산에 위치한 부대에는 각 훈련 영역마다 훈련장이 있었다. 그 허름한 모습은 인위적인 대신, 주변의 자연과 흡사해 보였다.
그와 반대로 갓 지어진 하얀 건물이 있었다. 민가에서 지은 양계장이다. 내부를 본 적은 없지만, 닭들이 계속 알을 낳을 수 있게 구성돼 있다고 한다. 전등이 24시간 켜져 있어 아침과 밤을 구분하지 못한다. 정해진 지역을 벗어날 수 없이 앉은 채로 과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따뜻한 집과 밥을 제공하는 시설임에는 틀림없다. 혹시 닭들은 거짓된 환경임을 알면서도 별 다른 대안이 없어 얹혀사는 건 아닐까? 나의 모습처럼.
도서관에 앉은 한 마리의 나는 생각했다. 이날 유독 현실을 외면하고 상상에 빠져, 숨 쉬는 순간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고민 끝에 자리를 벗어나는 와중에도 타협인지 진심인지 고민했다.
집에 가서 나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퇴사'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았다. 첫 번째 블로그에서 '두 번째 퇴사'라는 제목을 발견했다. 일반 서점에서는 재고 여부가 검색되지 않아, 어떻게 구매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스크롤을 조금 더 내려보니 독립출판사를 통해 출판된 책이라고 했다.
많은 서점 중, 홍대 인근에 독립출판사의 책을 보유한 서점 3곳을 찾아다녔다. 다행히도 3번째 들렀던 서점에서 하나 남은 '두 번째 퇴사'를 얻을 수 있었다. 우습게도 책을 찾는 도중, 걸으며 답답했던 상상의 대부분이 해소되는 걸 느꼈다. 아마도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습관이 탐탁지 않게 받아들였나 보다. 과거엔 자책했겠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대신 물러서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집에 오자마자 앉은 채로 책을 다 읽었다. 저자는 두 번째 퇴사 후 노트에 조금씩 적던 내용을 책으로 옮겼다고 한다. 읽는 내내 작가가 느꼈을 감정이 이해되었다. 또, 그 고민은 나완 다르지만 본질은 비슷하여 위로받을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 한 가지를 아래에 소개한다.
안 맞아서인지, 나약해서인지
누군가에게는 한숨 한 번 내뱉고 나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일상인데, 내게는 하루하루가 고역이고, 버거웠다. 이렇게 매일을 살 바엔 회사를 관둬버리고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이 두 번째 회사라는 것이 나를 붙잡았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두 번이나 그만두고 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 부적응자가 될 것 같았다. 다들 힘들지만 참으며 회사를 다니는데, 나만 인내심 없는 사람이 될까 봐 선뜻 그만둘 수 없었다.
나약하지 않다, 고작 그것 보여주려고 내 아까운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내가 이토록 다른 사람의 시선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인지 깨닫고 초라해진다. 아니, 사실은 나조차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정말 안 맞아서인지, 나약해서인지.
세상에 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만 개의 우주가 있는 것과 같다. 개인의 성향과 재능이 다 다르듯이, 똑같은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각자가 느끼는 감정과 크기는 다르다. 만일 너만 유독 힘들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네 미숙함을 떠나 그곳이 또는 그 일이 맞지 않을 수도 있음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해 입어 보고 맞지 않는 것이 같다면, '안 맞나 보다' 인정하고 벗으면 된다. 회사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세상 속 작은 곳일 뿐이다. 그러니 이 곳이 전부인 양, 누구나 회사를 잘만 다니는데 너만 낙오자가 된 것처럼 자조할 필요 없다.
경솔하게 홱홱 그만두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무엇인가를 그만두는 것에 필요 이상의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마치 인생의 실패자라도 되는 듯 스스로에게 굴레를 씌우지 않아도 된다.
맞지 않는 옷에 몸을 구겨 넣으려 하지 말고, 네게 맞는 옷을 찾으면 된다.
- 두 번째 퇴사 중에서 -
불안하고 괴롭지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다는, 오늘을 정리하는 나의 말.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