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요청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부탁하면 더 쉽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혼자 해내려는 사람이 있다. 미련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기꺼이 야근을 자처하던 사람, 내가 있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민폐 여부는 상대방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도와줄 수 있어?"라고 묻기도 전에 주저하고 망설인다.
다른 사람들의 요청은 호의적으로 대하면서도, 더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먼저 도와주면서, 내가 도움을 요청해야 할 상황이 되면 괜히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때로는 나처럼 마지못해 수락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고, 거절했을 때 '요청' 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거부당하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감정을 느껴보고, 표현해 봄으로써 '나'라는 존재가 점차 뚜렷해지는 반면에 부탁은 여전히 어렵게 다가온다. 이미 부탁하기로 결정한 이후에도, 꼭 부탁해야만 되는 것인지 고민만 하다가 결국에는 혼자 시도한다. 전 직장에서 지박령이란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만 하는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 요청의 당위성이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일에도 혼자 시도하면 결국에는 벽에 부딪치고 만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서도 단지 요청하는 게 어렵다는 이유로 굴곡진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요청하기 어려워하는 내가 변화할 수 있을까. 최근 읽었던 책 <해결중심단기코칭>에서는 예외 질문이란 개념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처한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예외란 문제가 일어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때를 말한다. 모든 문제에는 예외가 있다. 그러므로 문제가 언제, 왜, 어디서, 누가 그리고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주목하는 대신에, 어떻게 예외가 일어났는지에 주목하기 시작할 때 변화는 훨씬 더 빨리 일어난다.
도움 요청하기에 적용해보면 "도움을 요청하는 데 성공했던 예외적인 상황은 언제였나요?"라고 물을 수 있다. 혹은 "지금과는 다르게 이전에 성공했던 경험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며, 비록 다른 유형의 성공이더라도 그 과정을 탐색함으로써 가능성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작은 상자를 한 개 옮겨달라는 미미한 경험일지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공이라고 느꼈던 경험을 떠올림으로써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이 마음속에 싹트게 된다.
나에게 있어 최근에 겪은 성공경험은 무엇일까? 이전과는 달리 기어코 해냈던 예외 상황은 언제였을까?
나에게는 생각만 해도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경험이 하나 있다. 6개월 전이었다. 일본 오사카/교토로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구입한 기념품과 목도리를 교토의 한 식당에 두고 온 적이 있다. 귀국 전 날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이었다. 이 사실을 다음날 아침에 공항으로 가던 버스에서 나는 알아차렸고, 비행기 시간 때문에 다시 식당에 들를 여유는 없었다. 그 버스에서 나는 자책했다. 손에 들고 있던 짐을 칠칠치 못하게 식당에 두고 왔다며 온갖 비난을 스스로에게 쏟아부었다. 분명, 평소 같았으면 자책하며 포기하고 말았을 테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하지 않고 '나는 실패했어'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뇌며 자신감을 갈아먹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날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일행과 함께 낯선 길을 헤매며 구입했던 기념품 때문이었을까. 간사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식당 연락처를 찾아 전화했다. 일본어라고는 인사 용어밖에 모르는 '나'이지만, 두고 온 짐을 찾는 것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었지만 무작정 시도했다. 어설픈 영어를 구사하며 식당에 있을 수도 있는 영어 가능자를 찾았다. 다행히도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한 명 있었고, 나는 전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손짓을 써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제가 어제저녁에 기념품과 목도리를 두고 갔는 데 혹시 있나요?"
"음.. 네. 여기에 있어요"
"혹시, 택배로 한국에 보내주실 수 있나요? 돈은 먼저 보낼게요"
"음.. 우리는 당신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아요"
옆에 있던 일행이 국제 택배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어 식당 직원에게 말해보았다. 부탁과 거절로 이어지던 대화는 "생각해보고 다시 전화할게요"라는 직원의 말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사실 택배로 보내줄 수 있는지 묻는 게 얼마나 무리한 요청인지 알고 있었다. 돈을 먼저 입금한다는 전제가 붙었다고 해도 말이다. 다만, 요청의 사안을 따지기 전에 찾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상황이 여기까지 흐르자 되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난하는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슬픈 감정을 내내 느끼며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탔다. 일행은 포기한 듯 잠을 청했지만, 이대로 잊어버리기에는 억울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보고, 그럼에도 찾지 못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한국으로 오는 1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시도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정리했다.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하루를 묵었던 근처 호텔에 부탁해보는 것이었다. 영어 사전을 켜고, 하고 싶은 말들을 번역해가며 비행기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가 인공 공항에 도착하고 수하물을 찾자마자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영어로 열심히 설명하던 나에게 전화를 받은 직원은 "한국분이세요?"라고 되물었다. 한결 편안하게 내가 처한 상황을 알렸다. 돈을 미리 입금할 테니 혹시 호텔에서 내 짐을 대신 보내줄 수 있는지, 혹은 짐을 찾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지 물었다. 먼저 한 질문에 대한 직원 분의 대답은 "어렵다"였다. 호텔에 투숙객이 짐을 두고 가도 보내주지 않는다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개인의 부주의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나는 투숙객이었지만 호텔이 아니라 인근 식당에 두고 왔으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다만, 만약 호텔에 짐을 두고 가면 장기간 맡아 주기는 한다고 했다. 짐을 두고 갔던 당사자가 다시 여행을 오거나, 여행을 간 지인에게 부탁해서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두 번째 방법은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온 지인에게 방법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공항 리무진에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자, 지인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학생에게 부탁해서 되찾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지인의 설명을 듣고 포기하려고 했었다. 일본에 유학을 갔거나,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나, 일본에 거주하는 지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교토의 한 식당에 들러서 찾아야 되기 때문에 민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러다가 문득 일본 여행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했던 카페가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보니 여행에서 두고 왔던 짐을, 그 지역으로 여행 가는 사람이 되찾아주는 게시판이 있었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글을 올리면 대신 찾아주고 소정의 사례를 하는 방식이었다.
글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카페 등업이 우선이었다. 정회원이 되기 위해, 카페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달성하는데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내가 처한 상황을 상세히 정리하여 카페에 올렸는데, 몇 시간 뒤에 댓글이 달렸다. 인근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되찾아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댓글에 남겨져 있던 카톡 아이디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교토 인근에 거주하고 있으며 조만간 어머니를 뵙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할 거라고 했다. 급한 물건이면 국제소포도 가능하고, 급하지 않으면 국내로 들어와서 보내준다고 했다. 나는 급하게 받아야 하는 물건은 아니었기 때문에 국내에 들어와서 보내달라고 요청하며 소정의 사례금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온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식당에 전화를 걸어서 며칠 내로 한 남성이 내 이름을 대고 두고 온 짐을 찾아간다는 내용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식당 측에서 "알겠다"는 대답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감사하게도 아직 버리지 않은 채였다. 그렇게, 12월 중순에 떠났던 여행에서 잃어버린 기념품과 목도리는 2개월이 지난 2월 15일에 내 품으로 돌아왔다.
되찾는 과정에서 기념품과 목도리를 두고 온 식당이나 묵었던 호텔에 무리한 부탁을 했다. 지인에게 먼저 연락하여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묻고, 식당에 찾으러 갈 거라는 내용을 일본어로 대신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네이버 카페에서 대신 수령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부탁했다. 평소 같았으면 분명 부탁하거나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발 벗고 나서서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사람들이 내 요청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하는 것보다 되찾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짐을 찾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상황과 사정을 듣고 이해해 주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싫어하거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할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도움 요청 앞에 주저하고 망설이는 게 익숙한 '나'이지만, 기어코 해냈다. 성공했다. 만약, 짐을 찾지 못했더라도 아쉽기는 하겠지만 미련은 없었을 것 같다. 충분히 할 수 있는 노력은 모두 기울였으니까. 짐을 두고 온 나를 자책하거나 비난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일부로 두고 온 것이 아니었으며, 우연히 일어난 실수일 뿐이니까. 되찾기 위해 평소와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생각나는 방법들을 한 가지씩 적용해 본 것이 나에게는 성공경험이었다. 짐을 되찾은 건 덤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요청을 들어주듯, 경우에 따라서는 거절하듯 상대방 또한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의 도움 요청에 응답하는 게 당연하니까.
더 어려운, 아니 최악의 상황에서 기적처럼 성공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의욕이 들끓는다. 내면이 자신감으로 불타오른다. 현재 직면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예외상황이나, 이전에 해 냈던 다른 경험들을 떠올려보자. 그때의 상황이 실패했던 지금과 어떻게 다른지 면밀히 살펴보자. 분명, 성공한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들을 살펴보면 어떤 방법이 도움이 되는지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자신감을 갖자. 오늘부터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살아가다가 어떠한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좌절하지 말자. 실패자라고 스스로를 비난하지도 말자. 우리는 인생에서 숱한 성공경험을 했다. 단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냥 지나쳤을 뿐이다. 아주 작고 미미한 성취의 경험일지라도, 실패라고 여기는 지금과 다르게 행동했다는 거에 의미가 있다. 지속적으로 그 경험들을 되뇌며 한 가지씩 다시 도전해보자. 할 수 있다. 아니, 이미 해낸 경험이 있다. 해냈었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