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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un 13. 2019

내일의 내 모습은 어떠할까

3개월이라는, 인생에서의 유예기간이 끝나간다. 일시정지 되어있던 삶이 재생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고민 끝에, 모 대학교의 조교로 일하게 되었다. 직전 직장보다 급여는 많이 줄었지만, 대학원과 가까워서 공부하기에는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현재 야간대학원에 다니고 있으므로 직업을 갖기가 부담스러웠다. 고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자니 대학원 공부가 뒷전이 되고, 대학원 공부만 하자니 남는 시간도 많고 학비가 만만치 않다. 절충안으로 계약직 조교가 되기로 결심했다. 


만약, 내 삶에서 3개월이라는 유예기간을 갖지 않았더라면 분명 좌절하고 있을 거다. 조교라는 직업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32살의 남자가 하기에 적합하다고 느낄까 라며 상상도 했을 거다. 타인들의 생각이 마치 나와 동일하다고 여기며 사람들을 회피했을 테다.  


다행히도 꿈만 같았던 이 시간들을 보내며, 나는 몰라보게 건강해졌다. 섣불리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넘겨짚지 않으며, 내가 현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 또한 또렷해졌다. 자연스레 궁금한 게 생기면 물어보거나 내 의견을 피력했다. 여전히 서툴기는 하지만. 이전까지는 가정이나 상상으로 지나쳤던, 나를 드러내기 과정들을 거침으로서 보다 '나'에 가까워졌다. 


"이번에 조교로 일하게 되었어요"


같은 과 동기들에게 말했다. 최근에 대학을 졸업한 동기들의 생생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평가나 충고를 들을까 두려웠던 마음이 금세 사그라들 정도로 축하해줬다. 요즘 같은 시기에 조교라는 직업을 가진 게 어디냐며, 경쟁률이 높았을 텐데 능력이 좋아서 된 거라고 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고마운 마음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역시, 내가 갖게 된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가정이고 상상일 뿐이었다.


조건이 만족스럽지 않다 하더라도, 출근하지도 않는 직장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막상 가 보았는데 업무가 적거나, 공부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줄 수도 있다. 좋은 동료들이 있어서 업무가 수월하게 진행될 수도 있고, 능력 있는 상사를 보며 자기 계발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반면에 업무가 많거나, 편의를 봐주지 않을 수도 있다. 동료들이 이기적이거나, 상사가 능력은 없고 기분파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출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시도하지 않으면, 도전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알 수 없다. 이 세상 너머에 있는 환상의 세계일 뿐이다. 이력서를 작성함으로써, 제출함으로써, 면접에 참여함으로써, 출근을 함으로써 나는 미지의 세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작은 시도가 쌓여서 큰 변화를 이룬다. 이 말을 좌우명처럼 여기며 생활하고 있다. 로또나 연금복권에 당첨되어서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보내면 좋겠지만 비현실적이다. 기적은 좀처럼 우리 앞에 펼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이 될 수는 있다. 아무리 하찮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시도라도, 나는 무심코 넘어가지 않게 되었다. 기꺼이 한 번 더 생각해보며 이게 정말 나에게 필요한 일인지 따져본다. 또한 겁이 나거나 귀찮아서 외면하려는 건 아닌지 살피다 보면 나의 행동 여부는 곧 결정된다. 


요 근래에 쓰기 시작한 칭찬 노트에는, 100원짜리 동전을 줍겠다고 놀이터의 모래를 샅샅이 파헤치던 어린아이의 마음이 담겨있다. 어떻게든 쓰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몇 가지만 공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픈 와중에도 이력서를 썼다.

친구들과 만나 '자연스러운 나' 표현!

피하지 않고 전화번호부에 없는 전화를 받았음.

끼니를 거르지 않았다.

밥 먹고 도서관에 갔음. 조금 늦게.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나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그 변화는 진짜 나에게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쌓인 마음의 벽을 스스로 허물어 가고 있다. 어느새 낮아진 장벽은 그 너머에 있던 나를 보여준다. 장난꾸러기에 유쾌하고 웃음이 많은 내가 보인다. 눈물로써 재회하게 된 소감이 표현되었다.  


생각을 알고, 감정을 느끼고 표현해보며 나는 분명 '나'스러워지고 있다. 나 스스로에게도 씌워져 있던 가면을 벗고 진실된 내가 되어가고 있다. 


새로 갖게 된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며칠 만에 그만두더라도 괜찮다. 그 이유가 타당하다면 나는 기꺼이 내 의견을 수용할 수 있다. 물론, 지금 걱정해야 될 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그 일을 안 해보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조차 외면받았던, 나는 이제 없다. 누구보다 존중받아야 마땅한 나는 오늘의 칭찬일기를 뒤적거린다.


조교로서의 일 미리 가정하지 않았음.

진짜 내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음.

나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줬음.

 

가만히 방 안에서 무기력하게 앉아 있기에는 세상은 궁금한 것들로 가득하다. 한 가지씩, 천천히 알아가고 싶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와 가까워지는 시간을 보냈다. 이것이야말로 쌓여가는 티끌에 의한 기적은 아닐까. 내일의 내 모습이 몹시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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