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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Sep 20. 2019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선생님 어깨 좀 펴고 다녀요"


 '착하다'만큼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어깨 좀 펴고 다니라는 것이다. 어깨를 굽히고, 허리를 숙이고 다니는 게 습관이다. 특히 처음 만나거나 불편한 사람들 앞에서는 좁은 어깨의 간격을 더욱 좁히고, 허리는 마치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굽힌다. 


 태어날 때부터 허리와 어깨를 구부정하게 하고 다녔던 것은 아니다. 나도 어깨를 당당히,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장기자랑으로 친구들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수업시간에는 손을 들고 당당하게 발표하던 모습들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3학년 이후부터 줄곧 어정쩡한 자세로 사람들 앞에 섰다. 


 어깨를 굽히고, 허리를 숙이며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이유는 스스로를 낮춰 보임으로써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기 위함이었다.


 2003년, 16살이 된 나에게 침묵의 시기가 찾아왔다. 1학기 때까지만 해도 서로에게 별칭을 지어주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2학기가 되면서부터 나는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친구들은 변함없이 나를 대해 주었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친구들의 말과 행동에 어떻게 반응해야 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한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이나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친구들에게 반응하는 방법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하나의 작은 일도 큰 사건처럼 다가왔고, 직면하는 상황들 속에서 나는 의기소침해하며 움츠러들었다. 한동안 친구들의 주변을 말없이 맴돌았고, 마치 예견되어 있었던 듯이 그들의 기억 속에서 활기찬 나의 모습은 서서히 잊혀갔다.


 수업시간은 그나마 나았다. 선생님의 말씀을 가만히 앉아 듣고 있으면 되었으니까. 쉬는 시간이 찾아오는 게 다만 두려웠다. 친구가 없는 교실에서, 관심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오고 가는 공간에서 혼자가 되는 것만큼 외로운 경험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10분 남짓의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 나는 책상에 바짝 엎드려 있어야 했다.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소외된 시간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따금씩 "재는 맨날 자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마다 뜬 눈을 감추기 위해 나는 더욱 웅크렸다. 


 이 시절부터 나는 스스로를 낮추어 보였다. 마음과 반대되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며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고, 친구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내 의견을 묵살했다. 주변으로부터 '착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내면에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이때부터 겉으로는 친해 보이나, 속으로는 외로운 관계를 유지해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관심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면 친구가 실망하거나 떠나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여전히 있었다. 투명인간이 되어 그림자 없이 교실을 떠도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친구들에게 과하게 말하거나 행동하지는 않았나 되돌아보았다. 


 이러한 관계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서른이 다 되어서였다. 어디에서나 외로웠다, 나는. 그곳이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발보다 작은 사이즈의 신발은 신은 것처럼, 사람들과 어울려 있는 시간은 나의 마음을 옥죄였다. 


 셀 수 없이 많은 관계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친구와 의견 차이로 멀어지도 하고, 전혀 다른 성향이라고 생각했던 친구와 우연한 계기로 가까워지기도 하는 경험들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관계는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내 보일 수 있을 때 맺어진다. 그동안의 내가 가깝다고 믿었던 관계들은 가까운 형태를 유지했을 뿐, 가깝지 않았다. 내면에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들 때마다 자기 검열을 실시했다. 그 생각이나 감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함으로써 상대방과의 관계를 깨트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그 사람을 여행하는 일과 같다. 우리가 여행을 준비할 때를 생각해보자. 블로그나 카페,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꼼꼼하게 여행을 준비하였다 해도, 막상 여행지에 가면 예기치 못한 상황들에 직면하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몇 장의 사진과 후기만으로 어떻게 실수 없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까.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에 대해 평소 가졌던 생각이나 주변 사람들의 평판으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다가가서 말도 걸어보고, 식사도 함께 해 보고, 무엇보다 서로가 다름을 확인하는 일에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에게 한 걸음씩, 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마음으로 알아가야 진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 사람으로의 여행이 평생 이어지면 좋겠지만, 단 기간에 끝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행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행을 하는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고, 진실했으니까.


 만약, 중학교 3학년 때로 돌아간다면 친구들에게 무기력한 나의 상태를 설명할 것 같다.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결코 친구들이 싫거나 멀어지고 싶어서 무표정하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 


 앞으로는 어깨를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니고자 한다. 처음 만나거나 불편한 사람 앞에서도 애써 웅크리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낮춰 보이고자 했던 노력들은 내 진심이 아니었으니까.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었으나, 올바른 방법은 아니었으니까.   


*본 이미지는 Pixabay로부터 입수된 blanca_rovira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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