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Aug 30. 2019

'착하다'는 단어의 무게

"착하셔서 부모님께서 좋아하시겠어요-"


늦깎이 직장인이 된 동료가 말했다. 칭찬하려는 의도가 틀림없었다. 좋은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착하다'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생각해보면, 가볍게 듣고 넘어가기가 어렵다.


단어의 한정적인 의미가 한 사람의 삶을 규정해버릴 때도 있다.


언어를 통해 우리는 생각을 전달하고 그 언어에 담긴 의미를 해석한다. 언어가 짧아질수록 단어가 주는 의미는 자연스레 커진다. 때로는 단어 하나가 그 사람의 생각을 대변하기도 한다. 


언어가 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나에게는 더 그렇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착하다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함을 뜻한다. 동료가 나에게 '착하다'라고 말함으로써 나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항 사람' 이거나, 그러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착하다'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나를 따라다녔다. 부모님께서는 착한 행동을 할 때면 칭찬해주셨다. 당시에 내가 이해했던 '착한' 은 내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부모님께서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걸 뜻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담임 선생님께서 반 친구들 앞에서 '착하다'며 자주 칭찬해주셨다. 여기에서 '착하다'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나에게 실망하여 떠나갈까 봐 주번이나 청소당번과 같은 반의 일을 내 일처럼 해결한 것을 뜻한다.


"네"라고 대답하며 침묵하는 것이, 노력하는 것이 나에게는 '착함'이었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나에게는 '착하다'였다. 살아가며 점차 나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착해야만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고, 착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 비판받거나 외면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어떠한 단어도 나를 규정지을 수 없다. 그 뜻으로만 나라는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착하다'는 단어보다 나는 드높고, 광대하다. 나는 이따금씩 착하지만, 나쁘기도 하다. 심지어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주변 사람들을 배제한 채 나만을 위한 선택을 내리기도 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말실수를 하여 사과의 표현을 건네기도 한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다만 애정이나 관심을 받기 위해 '착하다'와 유사한 행동을 했을 뿐이다. '착하다'의 의미가 결코 나를 착한 사람이라며 못 박을 수 없다. 나는 그저 '나'일 뿐이다. 


"선생님은 일도 꼼꼼하게 잘하시고, 실수도 안 하시고, 완벽하시잖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당황한 얼굴로 업무를 물어보던 동료에게 말했다. 나의 짖궂은 장난에 동료는 환하게 웃으며 "아이고-"라고 대답했다. 미안한 마음이 전해졌다. 알게 된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착하다'라고 말하기에는 이르니까. 

이전 15화 상처를 지우개로 지워나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