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의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도 어김없이 전화는 걸려왔고, 한 학생의 높은 언성을 한 시간 가량 견뎌야 했다.
직접 안내한 내용은 아니더라도, 단지 해당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모진 말들을 듣게 된다.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 성적을 나쁘게 받았다던가, 공지를 안내받지 못해 학업에 차질이 생겼다던가 하는 학생들의 성난 목소리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이 굳고 땀이 새어 나온다.
전화를 끊고 나면 이따금씩 옆자리 동료가 찬물을 떠다 준다. "냉수 마시고 속 좀 달래세요"라는 말과 함께. 그럴 때면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든 학생에 대한 안 좋은 말들을 실컷 쏟아내고 싶어 진다. 동조해주는 사람에게 말로 표현하면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동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하며 주저하게 된다.
"네- 괜찮아요."
학생이 일방적으로 불만을 쏟아낸 탓에 한 마디 변명조차 하지 못했지만, 끝내 감정을 삼킨다. 동료에게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리고, 흔들리는 눈에 힘을 주며 괜찮다는 말을 건넨다.
우리는 살아가며 가면을 만든다. 또한 시의적절하게 꺼내어 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편안해요' 가면을, 알아가는 사람에게는 '가까워요' 가면을, '익숙한 사람에게는 '즐거워요' 가면을 사용하기도 한다.
마음과 반대되는 표정을 짓고 싶을 때, 우리는 가면을 떠올린다.만들어지는 가면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타고난 성향과 자라온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살아가며 겪는 경험들은 우리로 하여금 가면을 써야 될 순간을 알려준다.
울고 싶을 때, 울음을 그치라는 일침이 우리의 눈물을 멎게 만든다. 웃고 싶을 때, 내 웃음에 동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입술을 굳게 만든다. 반복되는 경험들은 우리가 어떤 가면을 만들고 써야 살아가는 데 유리한지 조언한다.
가면이 필요할 경우는 많다. 마음으로 떠오르는 감정을 표정으로 거리낌 없이 지으며 살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상사 앞에서 우리 또한 감정적으로 맞설 수는 없으니까. 돈은 벌어야 하고, 이직의 기회는 자주 찾아오니 않으니까.
다만,진실된 나라면 어떠한 표정을 지었을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상사가 짜증을 낼 때, 표정은 비록 굳은 척 해도 속으로는 마음껏 화를 내고 불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러한 나의 반응을 느끼고 가면 뒤의 표정을 이해하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가 가식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면을 쓴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가면을 습관적으로 쓰다 보면 진실된 마음이 무엇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불쾌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거나 일이 커질 것을 두려워하여 '웃어요' 가면을 사용한다면, 그 상황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자연스레 비슷한 상황을 자주 연출할 테고, 속내와는 다른 표정을 짓던 우리는 그 상황이 우리에게 어떤 마음을 들게 하는지를 잊은 채, 그저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가면을 쓰는 것이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방법임에는 틀림없지만, 늘 가면을 쓰고 관계를 이어갈 수는 없다. 가면은 우리 마음의 일부일 뿐이며,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계의 중요성만큼이나 마음의 파도 또한 거칠게 치는 상황이라면 때로는 과감하게 가면을 벗어던졌으면 한다. 우리 스스로보다 중요한 관계는 없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불편해요' 표정도 지어보고, 알아가는 사람에게 '긴장돼요' 표정을 지어보고, 익숙한 사람에게 '부담돼요' 표정도 지어보자.
가면을 쓰고 이어가는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가면을 쓰되,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게을리하지 말자. 필요하다면 느껴지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의 표정으로 드러내자.
때로는 이전의 상황을 곱씹으며, 그때 느꼈던 마음을 상기시키며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자. 그 표정이야말로 거짓 없는, 우리의 마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