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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Nov 17. 2019

인생을 지금 여기에서 계속

최근, 심리검사를 받았습니다. 상담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그럴싸하게 합리화했지만, 사실은 제 마음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주기를 정해둔 것처럼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바뀌면 만족하고 적응하다가 이내 실망하고 우울해하는 시간을 지난 몇 년간 보냈습니다. 


'왜 이렇게 유사한 고통이 반복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은 심리검사를 받으며 해결되었습니다. 결과지에는 현실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고, 그중에서는 자아정체감이 부족하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어느덧 서른두 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저를 모릅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그 사람들이 좋아하면 저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싫어하면 저에게 잘못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길 원하면서도 집 안을 서성이던 이유였습니다. 명확한 원인 없이 사람들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선뜻 마음 열기가 어려웠습니다. 친해지고 싶으면서도 다가올 수 있는 길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다가서지도 않았습니다.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제가 마음을 지키기 위한 비결이었습니다.


어렴풋하게나마 변화하기 위해 시도했던, 그동안의 글들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목소리를 내야 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그 말이 목 언저리에서 맴돈다면 말입니다. 변화는 시도로부터 찾아옵니다.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것만으로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쉽게 변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기꺼이 시도했을 때 변화는 시작됩니다. 


여러 가지 도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요일 꽃 사러 들러야지'라고 생각하며 꽃가게를 지나가다가 '이 가게가 일요일 여나?' 하며 되물었습니다. 이용해본 적이 없는 곳이어서 정확한 정보를 몰랐습니다. 평소 같으면 '나중에 확인해야지' 생각하며 지나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가게 안으로 기꺼이 들어가서 "일요일에 가게 문 여나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여전히 뿌듯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 앞에서 안 좋은 표정을 지으면, 그동안은 제가 실수한 것이 있나 되짚어보았습니다. 이제는 말을 걸어보며 저에게 원인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 때문이라고 해도 대화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과거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해결했던 성공경험을 찾는다던지, 마음의 문을 만들어서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말이나 행동을 차단한다던지, 사람들이 저에게 자주 하는 '착하다'는 단어를 되짚어봄으로써 저와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이 시간들을 통해 제가 좋아하는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선호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싫어하는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불편해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직업은 찾을 수는 없었지만, 어떤 직업이 저에게 적합할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단 한 가지 사소한 일이라도 어제와는 변화를 주기 위해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 끝에 그토록 제가 찾던 저의 모습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완성형 인간은 없습니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반성하며 사람은 평생 동안 성장해 나갑니다. 단지 저는 몇 걸음을 앞으로 떼었을 뿐입니다.  가지 확실한 사실은 어제보다 오늘을, 오늘보다 내일을 저답게 살아갈 것입니다. 


<서투른 손길에 생채기가 날지라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동굴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동굴 안에는 성장해오며 억눌러왔던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해 메는 인생의 해답은 어쩌면 햇빛이 닿지 않는, 동굴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실된 마음을 숨기고 때와 장소에 따라 적응하려 노력해왔습니다. 이제는 다르게 살아볼까 합니다. 다짐합니다. 앞으로 동굴에서 만나게 될 제 모습을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독촉하거나 욕심내지 않으며, 등불처럼 따스하게 보듬어 주겠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여정이 되겠지만, 우리 함께 용기 내어 나아가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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