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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pr 18. 2020

우리 때문은 아닐 거예요

'만약에'라는 가정은 사람들에게 좌절을 안겨준다. 만약이라는 상황은 실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그 과거를 경험했기에 현재의 우리가 존재한다. 아무리 거스르고 싶어도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나에게는 '만약에'가 '나 때문이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나로 인해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것처럼 느껴지면 스스로를 자책했다. 물론 나 때문에 일어난 일도 있었다.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이었다.  


친구와 서울 외각으로 함께 놀러 가던 길. 내가 정한 경로는 그날따라 막혔다. 버스가 도로 위를 좀처럼 달리지 못하던 그 상황에서 나는 '만약에'를 꺼냈다.


'만약에 내가 지하철을 타고 가자고 했다면' 

'만약에 내가 다른 곳으로 놀러 가자고 했다면' 

'만약에 내가 다른 날 만나자고 했다면' 


괜찮다며 나를 달래는 친구 앞에서 괜찮지 않은 표정으로 나는 마음의 굴을 팠다.


오랜만에 친구네 집에 모여 배달음식을 시켜먹던 날. 그날따라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 의견을 말하고 주문했다. 배달되어 온 음식은 양이 적고 맛도 없었다. 젓가락이 더디게 움직이던 그 상황을 보며 나는 '만약에'를 꺼냈다.


'만약에 내가 의견을 내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다른 음식을 먹자고 말했다면'

'만약에 내가 친구네 집에 오지 않았다면'


먹을만하다고 말해주는 친구들 앞에서 먹을만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나는 마음의 굴을 팠다.


'나 때문이야'라고 외치던 순간들은 이외에도 많았다. 대부분은 의도치 않게 벌어졌고 내가 통제할 수 있었상황은 아니었다. 일어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상황들 속에 하나였으며, 다른 선택이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외의 상황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내 잘못이라며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마음의 굴은 끝이 없다. 팔수록 깊어지기 때문이다. '나 때문이야'로 단련된 마음은 어지간한 자책으로는 기별도 가지 않는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하루 종일 '나 때문이야'를 되뇌는 날도 있었다.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 때문이야' 감옥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눈 앞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상황이 벌어졌던 순간으로 태엽을 반복해서 되감으며 다르게 행동하는 나를 상상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상황들은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다. 먼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우리 눈 앞에서 상황은 벌어진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스스로를 자책하는 데에 익숙했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자연스레 '나 때문이야'를 꺼내 들었을 뿐이다.


이제부터는 실수를 저지르거나 잘못을 하는 상황들 뿐만 아니라, 눈 앞에서 일어나는 숱한 상황들에서 마음의 굴을 파지 않기로 했다. 그러한 상황을 겪는 데에도 내 마음은 잔뜩 괴로웠다.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스스로 헤집으며 아파할 이유가 있을까.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자책' 보다는 '돌봄'이 필요했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만약 '나 때문이야'를 외치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묻자. '괜찮아? 많이 놀라지 않았어?'라고.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충분한 힘을 이미 가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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