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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pr 28. 2020

나는 또한 수많은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작가님 어서 오세요."


카페로 들어서던 나에게 대학원 동기 선생님들은 말했다. 쑥스러운 탓에 "반가웠습니다."라고 말하며 뒤돌아서던 나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자리에 앉은 나는 출간에 대한 질문을 동시에 받았다. 언제, 어떻게, 어떤 주제로 책을 내었는지에 대해. 그 물음들에 하나씩 대답하다가 인상 깊은 모습을 문득 발견했다. 눈빛이었다.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들에게서 순수한 관심이 느껴졌다. 따스했다.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 생생하게 떠오를 만큼. 사실 나는 출간을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책을 냈다는 사실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더욱 겁이 났기 때문이다.


원고 작업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4년 동안 써온 글들 중에 일부를 목차에 맞게 분류하고, 퇴고를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정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과거에 쓴 글을 들여다보는 건, 촌스러운 스타일의 옛 사진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우고 싶었지만, 글을 쓸 때의 생생함을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원본을 최대한 유지하며 수정을 거듭했다.


예정된 인쇄 날짜가 다가올수록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편집자와 서로 검토, 공유하며 신중을 기했다. 머리를 양 손으로 싸매며 '나는 안 될 거야'라고 중얼거리기도 여러 번, 기다리던 인쇄의 날은 밝았다. 이른 새벽부터 나는 깨어 있었다. 출간에 대한 설렘은 아니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도 있다는 환상은 더더욱 아니었다.


지난밤, 내가 겪은 경험들로 채워진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걸 생각했었다. 블로그처럼 수정이 불가능한, 종이에 찍힌 책이 출간되어 사람들에게 읽힌다고 생각하니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다. 내가 적은 이야기로부터 받을 수 있는 누군가의 상처와 예상할 수 없는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최종 원고는 이미 편집자의 손으로 넘어갔지만, 나는 밤새 원고를 들여다보며 다시 수정하고 싶은 부분들을 표시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편집자에게 연락하여 수정이 가능한지 물었다.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어제 날짜로 원고를 인쇄소에 넘겨 동판을 미리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실례를 무릅쓰고 나는 내가 현재 얼마나 불안한지에 대해 토로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편집자에게 개인사를 늘여놓으며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했다.


출판사 대표와 인쇄소에 확인하고 준 편집자의 연락에서 안도할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 비용을 지불하여 동판을 새로 제작, 인쇄한다는 내용이었다. 감사한 마음을 거듭 전하고 수정한 원고를 보냈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여 번지점프를 해 본 적은 없지만, '번지점프대 위에서 혼자 밤을 새우고, 밝아오는 아침을 향해 힘차게 뛰어내렸을 때의 기분이 이러하지는 않을까?'하고 혼자 상상했었다.


출간한 뒤에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아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출간 소식을 알렸다. 그들에게서 돌아오는 "축하해."라는 인사가 반가우면서도 선뜻 다른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지 못했다. '내가 책을 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렇게, 공공연하면서도 비밀스럽게 책을 출간한 지 1달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책을 구매했다는 동료 선생님들의 말에 나는 거듭 감사하다고 했다. 어디서, 어떻게 출간 소식을 전해 들은 걸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들이 가득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만 감사해도 된다는 말에도 나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더한 감정이 내면에서는 일었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벅차오르던 나를 설명하다가는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책을 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앞으로는 기회가 된다면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출간 이야기를 꺼내기로 다짐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다정한 어투로 축하한다고 말하며 기뻐해 줄 거란 확신이 들었으니까.


사회복지사가 아닌, 예비 상담사가 아닌, 작가로서의 서막을 알렸다. 블로거가 아닌 초보 작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어떠한 우여곡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앞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늘 그랬듯, 차곡차곡 쌓여가는 글들이 나의 이정표가 되어줄 테니까.


지금 이 순간, 글을 쓰고 있는 우리 모두는 작가이다. 노트에 적은 일기일지라도, 자신이라는 독자를 둔 작가임이 틀림없다. 여전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소심하고 겁 많은 '나'이지만, 진심이 담긴 문장을 쓰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하는 나는, 또한 대한민국의 수많은 작가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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