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라고 하면 반질반질한 비닐 포장지에 싸인 네모난 상자가 나는 먼저 떠오른다. 포장에 대해 잘 몰랐던 과거에는 힘으로 포장지를 뜯었었다. 안에 든 물건을 그저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포장을 위해 갖은 정성이 들어간다는 걸 안 이후에는 테이프를 하나씩, 손톱으로 긁어가며 조심스럽게 뜯는다.
하나의 물건이 선물로 포장됨으로써 삶에 극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선물이 전달될 때에, 그 선물이 포장지로부터 벗어나 세상에 처음 공개될 때의 그 순간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 기뻐하는 것 이상으로 주는 사람 또한 감격한다. 준비한 선물이 한 사람의 마음에 가득 들어차는 걸 보면 가만히 앉아있기가 또한 어렵다.
선물을 주는 사람이 기대하는 것은 받는 사람의 반응이다. 준비한 선물을 아무런 반응 없이, 혹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는 사람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놀라고, 감동받은 표정으로 기뻐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고마워."라고 말하는 모습을 바라지는 않을까.
하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한 선물을 주기란 어렵다. 특히 가족이나 연인, 친구가 필요하다고 해서 주는 게 아니라, 사주고 싶다는 마음에 선물하며 특별한 반응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일방적으로 주었기 때문이다.
유치원 때였다. 하루는 빨간 모자와 옷을 입고 하얀 수염을 붙인 사람이 나타나 보따리에서 선물을 하나씩 꺼내 나누어주었다. 내 차례가 되었고 선물을 받은 나는 양 손 가득 끌어안으며 기뻐했다. 의기양양하며 제 자리로 돌아가던, 좋아하던 내 모습은 여전히 선명하다.
하지만 이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장난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유행하던 로봇 장난감을 나는 받고 싶었지만, 포장지 안에는 철 지난 로봇 장난감이 들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장난감은 부모님께서 고른 것이었다.
만약, 산타 할아버지께서 착한 일을 많이 한 수호에게 선물을 주실 건데 어떤 선물이 갖고 싶은지 먼저 묻고 구입하셨으면 어땠을까. 유치원에서 그 선물을 받았을 때에 나는 한 해 동안 어른들의 말씀을 예의 바르게 들었던 스스로에 대한 감사와 저지른 잘못들에 대한 반성을 동시에 하지는 않았을까.
선물은 한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값비싸고 극적인 선물일지라도 평소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방의 선호와 취향을 고려한 선물은 주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파도처럼 커다란 울림을 준다.
커피를 못 마시는 친구에게 보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 책을 잘 읽지 않는 친구에게 주는 자기 계발 서적. 액세서리를 거의 하지 않는 연인에게 주는 고가의 귀걸이는 의미나 값을 떠나 받는 사람에게 썩 달가운 선물은 아닐 것이다.
어떠한 선물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까. 주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평소에 자주 묻고, 꺼내는 이야기들을 귀담아듣지 않으면 평생 선물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주는 것만으로는 선물이 될 수 없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