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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y 26. 2020

살아있다, 나는

청첩장을 받으러 영등포역에 갔다. 카페에 들러 근황을 듣고 이른 저녁 헤어졌다. 주말마다 과제에 치여 사는 내가 시간을 내어 친구를 만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과제는 나의 능력을 뽐낼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다. '나'라는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과제를 제출한다는 건, 나의 무능함을 보는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꼴이니까.


제출 기일이 다가오는 과제를 제쳐두고 외출한 나는 일탈을 꿈꿨다. 걷기로 결심했다. 누군가는 고작해야 걷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세상에 적응해가던 내가 스스로에게 침잠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내가 보고 싶고, 알고 싶을 때 나는 걷는다.


어디를 걸을까.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다. 찾아볼 의욕도 없었지만,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걷는 내가 어딘가를 선택해서 걷는 게 사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로표지판에서 친숙한 지명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었다. 도로 위를 빠르게 달리는 차들, 마주오는 연인들의 웃음소리, 식당마다 가득 들어선 인파가 눈에 띄었다. 


움츠러드는 걸 느꼈다. 사람들 틈으로 계속 걸어가고 있었지만, 되려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왜 걸어야 되는지 또한 가물거렸다. 지나가는 버스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정류장을 지나칠 때마다 눈에 익은 번호가 있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벤치마다 앉아서 쉴까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강도를 올리던 다리 통증은 말했다. 걷지라도 않으면 내가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걷는다는 건, 지금 이곳에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스스로에게 알리는 생존 신호라고. 


갈림길에 선 나는 도로 표지판을 확인했다. 마포역은 직전, 여의나루 역은 우회전이었다. 전자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고, 후자는 가야 될 이유가 없는 길이었다. 열시가 다 되어가던 때이기도 했고, 일요일이었기에 출근을 염려하던 평소의 나라면 집으로 가야 했다. 왜 그랬을까. 우회전을 했다. 


강가에 다가가서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흐르는 강물을 가만히 서서 바라볼 수 없었다. 서 있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건 아닐까. 낯선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어떡하지. 일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경치를 감상하는 대신에 주변 사람들을 의식했다.


서른 걸음쯤 더 걸었을까. 언제 다시 한강에 오게 될지 생각했다. 기약이 없었다. 밤 시간에 혼자서라면 더더욱. 과제와 출근에 대한 걱정은 포기하고 맨바닥에 앉았다. '일어설까?'를 수없이 반복하던 나에게 흐르는 강물이 점차 보였다. 여의나루 역에서는 멈춰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폭의 그림 같았으니까. 살아있었다. 가까이서 들여다본 강물은. 들이쉬고 내쉬며 호흡하고 있었다.   


강물에 반사되는 가로등은 눈부셨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나는 강물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벅차오르듯 뛰는 심장이 있었고, 불끈 쥔 두 주먹이 었었으며, 격양된 호흡이 있었다. 살아있었다. 나는.


 *이미지 출처: Sunyu Kim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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