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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ug 19. 2020

미안한, 나의 어린 친구에게

친하게 지낸다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관계는 기본적으로 가치관의 충돌을 일삼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 자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타고난 성향도 물론 다르지만 겪은 경험과 그 경험을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다르다. 유사하다고 느꼈던 사람들마저 성장하며 궤도를 점차 달리한다.


나에게는 단짝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서진이가 우리 동네로 이사 왔다. 주변에 사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우연한 기회로 끼게 된 서진이와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우리는 서로의 이름이 불리는 곳이라면 언제나 함께였다.  


아는 형들과 어울려 올챙이를 잡으러 뒷산을 올랐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야단을 맞은 다음 날에도 우리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한다며 동네를 배회하다 마주쳤던 개나리만큼이나 우리는 활기찼다. 혼자였다면 결코 반짝일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등교를 함께하기 시작했다. 먼저 준비한 사람이 집 앞으로 가서 기다렸다. 전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길이 엇갈린 위험도 없었다. 서로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동네에서 어울리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각 자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이는 굳건했다. 등교할 때만큼은 적어도 함께였으니까.


우리 사이가 멀어지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나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서진이에게 말도 없이 혼자, 먼저 등교했다. 새로 사귄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나를 모른 채, 서진이는 1주일 동안이나 우리 집에 들렀다. 문을 두드리고 내가 이미 등교했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1주일이나 들었던 서진이는 더 이상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나의 일방적인 행동으로 굳건했던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을 자초한 나는 메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인사조차 하지 않는, 갈라진 관계를 머지않아 서진이가 이사 갈 때까지 유지해야 했다. 사과해야 마땅했으나 용기가 나질 않았다. 다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나는 결국 서진이네 집으로 찾아가지 못했다.


요즘 같은 날. 수다를 떨고 싶지만 '나를 얼마나 이해해줄까?'라는 의문이 들고,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 이 시간에 너와 나란히 걷던 그 길이 가끔 생각난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설레던 너에게 나는 미안하고, 부끄럽고, 보고 싶다.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흙바닥에 누워 하늘을 함께 올려보던, 느리게 흐르는 구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평온했던 그 순간을. 이렇게, 이렇게 온갖 치사하고 더러운 꼴을 겪으며 성장할 줄 알았더라면. 너와의 추억과 미안했던 일이 계속 마음에 남아있을 줄 알았더라면. 기어코 찾아가 너에게 사과했을 텐데.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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