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Jul 22. 2020

의식하는 내가 싫다

맥주를 마신 날은 브런치에 한 번씩 들어온다. 주저리주저리 내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두 줄 쓰다가 이내 저장하고 나간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골몰하는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이다.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한다. 말을 하는 그날 나의 컨디션, 상대방의 성향과 모습, 말하는 곳의 분위기처럼 맥락을 파악하며 어렵사리 입을 뗀다. 대화에 집중하다 보면 금세 기운이 빠지고, 커피를 연달아 마시는 나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대화는 사람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여러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나와 관계를 만들어가고, 나는 또한 누군가와 관계를 만들어간다. 대화는 관계 속에서 서로를 잇는 끈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끈을 가지고 상대가 허용하는 곳까지 다가가 매듭을 짓고, 그 위치가 상대와 가까워질수록 친밀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애초에 하나의 끈이 아니었기에 매듭을 짓는 위치는 서로 다르다. 나는 상대와 가까운 곳에 매듭을 지었을지라도, 상대는 나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매듭을 지을 수 있다. 즉, 나는 상대를 친하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 사람의 마음에 든다는 건 또 다른 국면이다. 마음을 여는 데에는 개인의 성향, 환경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경계로부터 온전한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가 하는 말에 그저 세심하게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나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는 소중하다.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순간을 함께하고 있으니까. 나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에게 침잠하며 더 깊이 이해하고, 내가 느낀 생각이나 감정을 이야기하며, 진실된 모습으로 서 있는 그 사람의 허리에 나는 매듭을 짓고 싶다.


그렇기에, 이곳에서만큼은 나는 고해성사를 하고 싶다. 생각은 덜하고, 마음이 가는 데로 손가락을 움직이고 싶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히든,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내고 싶다. 이곳에서조차 누군가를 의식해야만 하는, 의식하는 내가 싫다. 


언제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질까. 언제쯤 생각이 덜 관여된 표현으로 나는 세상과 마주할 수 있을까. 이런 잡스러운 글마저도 퇴고를 해야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는, 나는.

매거진의 이전글 그 밤을 기억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