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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Sep 13. 2020

어디로든, 어떻게든

깨고 싶지 않았다. 아니, 누워있고 싶었다. 그냥, 계속. 해는 여전한 볕을 뿜으며 재촉했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식사도, 과제도, 연락도. 가만히, 숨 죽이고 싶었다. 방 안에서.


재촉한다. 매일처럼, 시간은 정해져 있고 해야 될 일은 많다며 타박한다. 살아가는 게, 방 밖으로 나가면 의지대로 되는 게 하나 없지만, 기어코 나가 부딪친다. 깨지고 돌아올 걸 알면서도, 걸어 나간다.


계획한다. 하지 못한 일을 곱씹으며. 검토한다. 잘하고 있는 걸까, 일을 하면서도 되돌아본다. 처리하기도 바쁘지만 점검하고 수정한다. 하루 대부분을 방 안에서 보내면서도 일의 진척은 더디다. 확신이 부족해서일까. 자책하며, 침대에 도로 눕는다.   


밥을 먹는 시간조차 번거로운 일처럼 느껴진다. 가을, 청명한 하늘이 펼쳐지는 요즈음이지만 그런가 보다 한다. 산책하며 계절을 즐기기엔 여유가 부족하다. 일을 되뇌며 또다시 자책한다.


'너 지금 이럴 시간 없잖아.'라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명치가 답답하다. 드라이버로 나사를 세게 돌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어나 봐야 쫓기는 마음이 들 테니, 일이라고는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스스로에게 부담을 줄 테니, 누워있을 수밖에. 가만히, 그냥.


상상한다. 바다를, 발끝까지 다가오던 파도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광경에 눈밑이 떨린다. 뭉클해지며,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내음이 나질 않는다. 바다는 사라지고 어두워진 내 방, 습한 공기가 나를 감싼다.


누워있을 수밖에. 잠이라도 들면 좋겠지만, 이마저도 마음은 허락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시간이 느껴진다 건 괴로운 일이다. 초침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거부할수록 시간의 흐름은 더욱 선명해진다.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주무시러 간 모양이다. 오늘을 나는 의미 있게 보냈을까. 자책을 시작한다. 멈출 수 있을까. 아니, 멈추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숨을 그저 크게 내쉰다.


라고, 지난밤에 적었던 글을 읽으니 안쓰럽다. 어차피 안 할 거였으면서. 하기 싫다는 나를 억지로 부추기며 나는 과연 무엇을 얻고자 하였을까. 기한을 놓친 일들로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을지언정, 나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걸어볼까. 어디로든, 동네를 한 바퀴 돌지라도. 가을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평안함이 마음에 깃들어, 반짝이는 쉼이 나에게 찾아오지 않을까. 바라며, 방 밖으로 나아간다.


잘 잤냐는 엄마의 인사가 다가온다. "네"라고 웃으며 반긴다. 베란다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진다. 시원한 물을 한 컵 가득 마시며 바라본다. 저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걸어보자. 어떻게든, 해야 될 일들이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집 밖으로 나아간다. 파란 하늘 아래, 나는 살아있다. 걸으며, 나를 되찾는다. 나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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