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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Sep 18. 2020

더 열심히가 아니라, 덜 열심히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자신의 분야에 심취하여 그 일에 몰두하는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저 사람은 어떤 능력을 타고났기에 저런 눈빛으로 일에 임하는 걸까?'라는 생각까지 들면 주늑이 든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몰두하는 모습은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공연장에서 본 무대 위의 배우들, 동영상으로 본 가수들의 라이브 영상, 일상에서 만났던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모두 특유의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원하는 것을 표현하거나 이루고자 하는, 군더더기 없는 열정이 그들의 시선에 담겨 있었다. 마주하면 온몸이 저릿해지는 그런 눈빛이었다.


최근 내 삶에 기적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우연한 기회에 깊이 있는 몰입을 경험했다. 지나고 난 뒤에 그 과정을 살펴보면 뜬금없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들과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과제 때문에 요즘 머리가 자주 아팠다. 논문이라고 정확히 말하는 게 더 적절할 듯싶다. 안정적으로 흘러가던 일상에 논문이라는 과업이 떨어졌다. 최근 연구 동향과 관심 가는 연구들을 살피며 주제를 선정하는 일은 어려웠다. 들이는 시간도 많았지만, 연구주제를 언제 확정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욱 컸다.


지난주 금요일부터는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생활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말수가 적어졌고,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자주 뛰었으며, 먹구름이 잔뜩 낀 표정을 유지했다. 당시에는 이 사실을 다만 알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해야 된다는 생각만 있었으니까. 상담도, 공부도, 논문도, 과제도, 나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그저께였다. 출근하는 길에 또다시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열심히 해야 된다는 생각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서로 다투었다. 마을버스 의자에 앉아 옴짝달싹 못하며 방황하다가 문득 싱잉볼 소리가 떠올랐다. 이전 직장에서 만난, 요가를 배운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된 싱잉볼은 명상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라고 했다.


선생님을 통해 처음 들었던 싱잉볼 소리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했다. 묵직하게 퍼지는 그 소리는 나로 하여금 새까맣게 어두운 공간에 나 혼자 존재하게 했다. 전화가 연신 울려대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던 사무실에서도 독실에 있는 사람처럼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이어폰을 끼고 싱잉볼 소리가 녹음된 음원을 틀었다. 중후하게 울리는 소리에 눈을 감았다. 또 한 번 울리는 그 소리에 호흡을 가다듬었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을 일정하고 편안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싱잉볼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온몸에서 전율을 느꼈다. 머릿속은 찌릿하더니 이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비가 그친 뒤에 점차 맑아지는 하늘처럼, 먹구름에 가려졌던 햇빛이 나를 슬며시 비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려야 될 때가 됐을까?', '누가 날 이상하게 쳐다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도, 해야 될 일들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도 "머물러보자"라는 말을 거듭 되뇌며 머무르고, 머물렀다. 버스가 완전히 멈춰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버스에서 내려 사무실로 올라가던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더 열심히 하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덜 열심히 하면 되겠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만 할 뿐 그만큼의 노력을 실제로 기울이지 않을 거면서 내가 만들어 낸 기준에 도달하기만을 바랐다. '아, 덜 열심히 하면 되겠구나'. 주어진 시간 내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기울인다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진정 원하고 바라던 열심히이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던 열심히는 내가 결코 이룰 수 없는 상상 속의 기준이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자 먹구름은 모두 걷히고 햇살이 쏟아지는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걷고 있는 내가 느껴졌다. 업무 시작까지는 여유가 있었으므로 사무실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근처에 있던 야외 벤치에 앉았다.


깨달음의 여파가 몸 안에 아직 남아있었다. 눈을 감자 다시 전율이 돌기 시작했다. 호흡하고, 바람을 느끼고, 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나를 보았다면 몰입하는 눈빛을 아마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나의 진한 열정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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