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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Dec 12. 2015

[15] 길 위에서 나를 묻는다

걷는다. 길 위에서 쌓였던 감정을 묻고, 나의 오늘을 묻는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관심을 가져달라는 건지 아닌지, 누구를 향한 아우성인지 사정없이 나를 두들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깟 소음 따위에 나누어 줄 마음의 여유는 없다. 저벅저벅. 걸으며, 성이 난 감정에게 중재를 요청한다. 받아들였다는 의미일까. 신경질적이었던 걸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한다. 거칠었던 호흡이 제 자리를 찾아간다. 헐거워진 상념 사이로 그간 꺼내어 볼 수 없었던, 나의 생각들과 마주한다.   


의식 없이 걷다가 문득 혼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의아한 나머지 주위를 살펴봐도 사람들은 어김없이 자신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아무런 감정 없이 뛰어가야 무엇이든 쫓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질적인 느낌이 몸을 감싼다. 먼 곳에서부터 가까운 곳까지 들려오던 소리들이 잠잠해진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고독이었던 고요함이 찾아온다. 그 고요함,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묻는다.


정말 괜찮은 거니?


길을 걸을 땐, 길의 종류보다 어떤 생각으로 걷는지가 중요하다. 아름다운 길이라도 마음속에 괴로움이 가득하면 흐르는 물줄기의 새초롬한 소리도, 오랜 벗을 맞이하는 듯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바람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반면, 황량하고 스산한 길에도 꼼꼼히 살펴보고 들여다보면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숨 쉬고 있다.


일본 교토에는 '철학자의 길'이 있다고 한다. 20세기 초반 일본에 서양철학을 들여온 교토대 철학교수 니시다 키타로가 즐겨 걷던 길. 가보진 않았지만 이름만 들어도 니시다 키타로가 좋아했던 길이라는 정보를 알 수 있다. 반면에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궁금했다. 그는 자신의 길에 어떤 이야기들을 남겨두고 왔을까?


그간 숱한 길들을 걸어오며 나는 나의 이야기들을 곳곳에 꼭꼭 숨겨두었다. 힘이 들 때, 한 번씩 꺼내어보고 다시 나아가기 위해. 그래서일까? 내가 걸었던, 때 묻고 얼룩 진 길들엔 다양한 감정들이 얽혀있다.


나에게도 그런 길이 있다. 퇴사를 고민하던 순간 걸었던 길. 두 손으로 꼭꼭 담아두었던 소중한, 나만의 길.


퇴사를 생각하는 순간에도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마음이 잠잠해질 때까지. 남산 꼭대기에서 남산도서관으로 내려가는 길엔 퇴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다시 걸을 땐, 눈 앞에 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눈물 없인 마주할 수 없는 진짜 이야기.   


모든 길에는 정답이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나 또한, 내가 걷는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두려움이 일지만 애초에 걷지 않았더라면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딛는 걸음들에 엉킨 실타래가 조금씩 풀어져간다. 매듭지어두지 않으면 잊히겠지만, 괜찮다. 내색하지 않아도 이 정도의 흔한 이별쯤 계속 건너 왔으니까.       


나를 생각하는 시간 속엔 항상 내가 걷던 길이 있다. 찾아가 살포시 발을 내려다 놓고 걸음을 옮기면 그 날의 감정들이 피아노 연주하듯 잔잔하게 들려온다. 넋 놓고 바라보는 해를 등질 때도, 그리움 짙게 깔리는 저녁에도. 또 말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그 순간에도.


여행 전 부푼 배낭 같은 마음 안고 홀로 속삭여보자.

'오늘은 어떤 길을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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