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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Dec 20. 2015

[16] 그대, 함께여서 고마워

온통 너의 낱말들로 채워진, 나를 돌아보며.

부스스한 모습으로 잠에서 깬, 나는 오늘을 받아들일 수 없다. 밀물이 몰려와 마음을 깎아 내던 지난밤과 단 한 가지도 달라진 게 없다. 절절한 시간 꾹꾹 눌러 담은 몇 방울의 눈물이 너와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참아내기 위해 또는 간직하기 위해 쌓인 물결에 너와 나의 첫 만남이 비친다. 반사적으로 입꼬리가 실룩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는지 감정의 통제에 따른다. 닫힌 커튼 사이로 햇살 한 줌 들어와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너와 함께했던 모든 시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뜬금없지만 우리 눈 앞에 얇은 천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천의 색은 각 자의 생각에 따라 탁한 색을 띠기도 하고, 투명한 색을 띠기도 한다. 탁해질 때는 진실을 마주하고 있어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면 투명해질 때는 마주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에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천 너머의 '사실'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고 눈 앞에 있던 일들이 발 언저리에 닿을 때 우리는 알게 된다. 나로 인해 힘들었을 너를.


사랑에 있어 타인의 경험이 답이 될 순 없다. 단, 서로가 느끼는 그대로가 답에 가까울 수 있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 누군가 나에게 사랑에 대해 물어본다면 특별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내가 듣는 이야기는 상대방의 연인에 대한 감정과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객관적일 수 없고, 무엇보다 사랑에 객관적인 관점은 필요하지 않다.


사랑은 서로에 대한 '신뢰'라고 생각한다. 그 신뢰가 쌓이고 쌓이면 '확신'으로 발전한다고 믿는다. 자신의 연인에게 '확신'을 심어주지 않고, '확신'을 가져주길 바란다면. 그것은 본인의 잘못일 수도 있다.


'나의 연인이 나를 얼마큼 좋아하고 있을까?'를 고민하기 전에, '나는 소중한 연인을 얼마큼 사랑하며 존중하고 있을까?'를 생각하자.


사람은 저마다의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다. 하물며 내가 사랑하는 연인에게도 자신만의 소중한 가치관이 있다. 우리가 연인과 지내며 서로 양보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양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했음에도 이것만은 꼭 지켜줬으면 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만큼은 서로 배려해야 되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우리는 '나의 연인은 이래야 한다' , '나는 연인에게 이래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다. 그건 나의 생각이지 연인의 생각이 아니다. 상상할 바엔 차라리 대화를 나눠보자.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생각의 차이가 쉽게 좁혀질 수도 있다.  


연인이 되기까지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아가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사랑을 얻기 위해 상대방에게 어필할 수 있는 모습과 성향을 띤다. 상대가 자상한 사람을 좋아한다면, 나는 자상하지 않아도 그런 모습을 띌 수 있다. 여기서부터 첫 번째 과제에 직면한다. 스스로 정한 역할 안에 갇혀, 연인에게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괴리감이 들 수 있다. 더 발전하면 공허함과 외로움 같은 감정이 일상이 되어버리곤 한다.


상대방은 처음 연인이 보여줬던 자상한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때,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나?'라는 의문과 함께 '변했다, 식었다'라는 표현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은 가면을 쓴 변극이 아니다. 성숙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가 바라는 만큼, 멀어지는 게 사랑인 것 같다.


퇴사 후의 공백으로 너의 소중함을 더욱 알았다는, 변명으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나에게는 4년을 만난 연인이 있다. 학생 때 만나 서로 직장인이 되기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변화가 생길 때마다 몇몇 위기들이 다가왔다. 배려심 깊은 너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어리석게도 힘든 일들에 부딪칠 때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과거의 네가 그리웠다. 또 보고 싶었다. 지금 너의 모습은, 그때완 꽤 달라졌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알고 있었을까? 현명한 너는 알았을 수도 있었겠지. 그럼에도 아무 말없이 기다려준 너에게 난,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까? 그 변명이 너에게 있어 조금의 위로라도 될 수 있을까?


퇴사 후의 공백이라는 시간을 통해 평생 쫓아다닐 것 같던 얇은 천이 잠시 사라졌다. 눈 앞엔, 그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곁을 지켜 온 너의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에 나는 확신을 갖는다. 다시는 아무리 어려운 일들이 나타나도 내 눈에 얇을 천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리라.    


지금은 조금 힘들지만, 나아지리라 믿는다. 나아가리라 믿는다. 함께.


적막한 하늘을 알록달록하게 수놓았던 가을이 지나고 지친 우리의 마음 포근하게 채워줄 것 같은. 새 하얀 겨울이 찾아왔다.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봄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연말이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시대의 풍조 때문일까? 아니면, 얼어붙은 나의 두 손을 따스하게 감싸주던 너의 온기 덕분일까?  


바라본다. 눈, 내린다. 천천히. 내 마음 녹일 것처럼.

생각한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단 한 사람, 그대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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