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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Feb 10. 2021

식은 감자탕의 맛을 물어봐 줄 사람이 필요했다

중학교 때 부모님께서 감자탕집을 열었다. 첫 창업이었다. 갑작스레 퇴직을 한 아빠가 식당을 차리겠다고 했다. 자영업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던 나는 그런가 보다 했다.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데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줄 알았으니까. 언제부터 준비하신 건지 모르고 있던 나는, 경기도 지역에 우리 가게가 생긴다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될 무렵부터 부모님은 식당을 본격적으로 운영했다. 점심에는 뼈해장국, 저녁에는 감자탕을 주로 팔았다. 저녁이면 퇴근하던 아빠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가게에서 보냈고, 엄마는 아빠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가게로 나갔다.


고등학생이었던 누나는 독립심이 강했다. 일찍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여 생활비로 사용했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늦은 시간에 집으로 들어오는 누나가 당연해 보였다. 고등학생이 되면 누구나 저녁 10시 정도는 되어야 귀가하는 줄로만 알았으니까.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집으로 들어오면 가족이 있었다. 저녁이 되면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기도 하고, 아빠가 야근을 하는 날이면 누나, 엄마와 함께 돈가스나 짜장면을 시켜먹으며 떠들썩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감자탕집을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게 뒤바뀌었다. 가족들과 식사는커녕 얼굴조차 자주 못 보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가계 사정이 안 좋아진 탓인지 아빠는 유독 말수가 줄었고, 엄마는 늘 피곤해 보였다. 그을음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부모님의 표정은 조금이라도 펴질 줄을 몰랐다. 누나도 집에 없었으므로, 나는 혼자가 되었다. 학교에서조차 스스럼없이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못해 소외되거나 외면받을까 겁내며 다녔는데. 가족들이 언제 돌아올까 기다리는 집에서의 모습이 학교에서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컴퓨터에 본격적으로 빠졌었다. 게임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게 좋았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현실에서의 시간을 죽이고, 가상에서의 시간을 키워나갔다. 가족들로 채워져 있던 자리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 불 꺼진 채였다. 오후 5시 정도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냉장고에서 뚜껑이 덮인 냄비를 꺼냈다. 부모님께서 말씀하시던, 수호가 좋아하는 감자탕이었다. 기름기 때문에 젤리처럼 변한 감자탕을 가스불에 올리고 끓였다. 보글보글하는 소리가 들리면 식탁으로 옮긴 뒤에 오직 감자탕에 의지한 채 밥을 먹었다. 어제도, 그제도, 언제나 감자탕이었다.

 

어두운 거실에서 TV를 틀지 않은 채, 숨 죽이며 먹던 그 맛은 아직도 선명하다. 성인이 될 때까지 한동안 감자탕을 먹지 못 했었다. 그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던, 혼이 나도 마땅한 성적을 받아와도 가족들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묻지 않았다. 태어났기에 생명을 다할 때까지 살아가야 하는 기계처럼, 주어지는 대로 살아갔다. 학교에 가고, 밥을 먹고, 컴퓨터를 하고, 잠을 자며. 그 누구도 나에게 살아갈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채워지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함구한 채, 버텼갔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며 가게는 문을 닫았다. 손님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집에 있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대화는 늘지 않았다. 아빠는 다른 가게를 열겠다고 알아보러 다니셨고 누나는 여전히 늦게 들어왔다. 이따금씩 마주치는 가족들은 나의 하루가 어땠는지,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고민하고 있는 건 없는지, 꺼내는 그 어떤 말에도 물음표를 달지 않았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도, 곁에 있기에 외로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견뎌갔다. 우리는, 서로. 각 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털어놓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며.


식은 감자탕의 맛을 물어봐 줄 사람이 필요했다. 사람, 한 사람이 필요했다. 오늘 하루는 어떠했냐며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지켜봐 줄 단 한 사람이 필요했다. 소시지를 구워놓았다며 집으로 빨리 들어오라고 베란다에서 소리치던 엄마, 때를 밀어주며 까마귀가 형님이라고 부르겠다고 웃으며 말하던 아빠, 툴툴 대면서도 자신의 돈가스를 기꺼이 양보해주던 누나는 없었다. 불 꺼진 방,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던 집에서 오직 빛나는 모니터에 의지한 채 하루를, 또 하루를 죽어갔다. 


Image by KOREA_STYL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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