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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Nov 18. 2021

나의 가만히에게

  저에게는 가만히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어요. 이름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친구예요. 해야 하는 일이 있어도, 마감이 다가와도 그는 자신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아요. 그저 가만히, 기다릴 뿐이에요.


  친구의 존재가 특히 도드라질 때는 관계에서 에요. 그는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어요. 누군가가 먼저 찾아주기를, 또한 기다리지요. 먼저 연락하는 자신을 친구들이 싫어하지는 않을까, 자기만 그동안 친하다고 느꼈던 건 아닐까, 실례인 건 아닐까 망설이다가 이내 혼자가 된다고 해요.


  익숙했대요. 혼자라 느끼는 순간이요. 고독함을 타고 다가오는 '충만한 자신' 같은 그런 느낌은 아니었대요. 어울리고 싶으나 혼자가 되고 마는, 사무치는 외로움으로 자신의 이름을 되뇌는 시간들이 잦았대요.  


  그의 성장에서 가만히는 살아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었대요. 그에게는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일이 자신의 삶을 지키는 최선의 방식이었대요. 이대보다 한 발 느리고, 그들이 앞서 찍은 발자국을 쫓아가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 나가는 게 당연한 삶의 과정인 줄 알았대요.


  언젠가 말하더라고요. 청소년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지고, 성인이라는 방목이 주어지며, 매 순간을 스스로의 선택에 의지하고 책임지며 살아가는 게 어려웠다고요. 죽도록 무서웠다고요.


  눈시울을 붉히던 그는 이어서 말했어요.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잊힐까 하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고요. 은 칠흑처럼 어두워져 가는데, 환하게 웃는 친구들을 보면 다가갈 수 없었대요. 힘을 줄수록 빠져드는 늪처럼, 마음을 꺼내 보이고 싶다는 소리가 커질수록 스스로 부담을 느끼며 멀어졌요.


  만히이니까. 자신의 이름은 가만히니까. 기다리면. 기다리고 기다리면 친구들이 알아주지는 않까. 다가와주지는 않을까. 가만히 있기에 좋아해 주던 부모님처럼, 그들도 나를 두 팔 벌려 반겨주지는 않을까.


  오늘도 가만히는 억지로 낮잠을 자며 잠자코 하루를 보냈대요. 잠에서 깨어났어도 일요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다시 눈을 감았대요. 런 그에게 득 살지 못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대요. 마음을 먼저 표현하지 않았기에 멀어져 간 친구들, 떠나지 않았기에 여전히 상상으로 남아있는 숱한 여행지들은 반대로 살아보고 싶은 이유 중에 일부래요.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어보고, 여러 여행지들을 거닐며 새로운 자극을 경험해보고 싶대요. 제가 보기에는 언제든 친구에게 연락해서 하소연도 좀 하고, 하루 몇 시간만이라도 짬을 내서 어디든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나 봐요.  


  그는 억지로 청하려고 했던 잠을 멈추고 눈을 떴대요. 겨울 들어선 하늘을 보기 위해 베란다로 나아갔대요. 여행용 의자를 펴고 그곳에 앉아 저를 불렀대요. 알고 있었어요. 그에게는 원하는 길로 스스로 걸어갈 수 있다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저는 그에게 현재 네가 살아보고 싶은 삶을 향해 걸어보라고 했어요. 이러한 마음을 저는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로 전달했어요.


  살아보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직은 모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요. 여전히 잘 모르기에 서서히 부딪치며 자신을 알아가겠다고. 다가오는 상황들과 그에 따른 선택으로 실패하는 경험을 하게 될 지라도, 그러한 경험들이 쌓여 '자기'로 살아가는 힘이 될 테니 그래도, 그래도 나아가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저는 가만히의 친구예요. 그가 멀리해야 할 친구는 회피와 억제이고, 친해져야 할 친구는 도와 도전으로 다가본능적인 자유로움이에요. 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악상에 자유롭게 몸을 휘저으며 벌어지는 춤사위처럼. 마음을 따라,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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