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Dec 05. 2021

나는 여전히 애를 쓰고 있었구나

"요즘 저에게는 나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오랜만에 나눈 대화에서 동료 선생님은 말했다. 그동안 여러 사람과 어울려 지냈기에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했다. 마음에서 정리된 언어는 목소리 톤에서부터 자세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메세지를 전한다. 나는 그의 눈빛에서 확신을 느꼈다. 아마도 그는 앞으로 자신을 돌보기 위한 시간을 늘려가며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들에 무너지지 않고, 균형을 잡아갈 것이다. 


"어, 저는 반대로 누군가와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요즘의 나는 외로움을 자주 느낀다. 원래도 그랬지만 최근 부쩍 심해졌다. 눈물이 많아졌고 누군가 밖에서 방문을 걸어 잠근 것처럼 무기력이 길어졌다. 한 번은 친구가 게임을 할 때에는 목표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나는 게임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목표가 없다. '방문 밖으로 왜 나가야 할까?', '침대에서 일어나 뭘 해야 할까?' 하는 생각들이 들면 나는 대체로 잠들기 위해 노력한다. 


어제는 등산을 갔다. 방에 가만히 있으려니 머리가 아파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특별히 하고 싶은 건 없었다. 걸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무기력한 상태를 이겨내기 위해. 산으로 들어서니 기분이 나아졌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집중하며 눈으로는 풍경을 쫓았다. 겨울 산답게 앙상한 가지들은 '혼자'라는 생각에 갇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산 중턱에 오르니 우리 동네가 한눈에 보였다. 정확하게는 초등학교 하굣길이 두 눈에 자세히 들어왔다. 솜사탕을 파는 할머니와 번데기와 병아리를 팔던 할아버지. 실내화 가방을 앞뒤로 흔들며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내 주변을 메운 듯했다. 돌이켜보니 그 시절에도 나는 괜찮지 않았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전전긍긍하며 살아갔다. 


좋은 성적을 받는다거나 하는 목표가 없었던 것은 그때도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 그보다 중요했던 것은 '소외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견디는 일이었다. 나는 유독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고민하는 아이였다. 말이나 행동을 할 때에 아무리 사소한 내용이라도 나의 검열을 쉽게 통과할 수는 없었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컸으나, 나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친구들이 실망하고 떠날까 봐 그들이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기대하고, 기다렸다. 


나는 많이 달라진 줄 알았다. 좋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전략을 많이 내려놓은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사람들이 실망하는 게 두려워서, 그들의 차가운 눈빛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불편해하는 그들과 겪게 될 긴장감이 무서워서 '좋은 사람'의 탈을 쓰고 지냈다. 초등학교 시절에 하교하며 생각했던, 실내화 가방을 발로 툭툭 차며 '언젠가,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하던 바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문득, 나 자신이 외롭고, 쓸쓸하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에게는 희망적인 내용으로 글을 끝내는 습관이 있다. '이렇게 저렇게 잘 살아보겠다.'는 내용에 가까운데 이번 글은 결코 그렇게 끝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안 괜찮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나의 안 좋은 면들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애쓰며 성장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그냥 그런대로 받아들이고 부족하게 살고 싶다. 찌질해 보여도 좋다. 불쌍해 보여도 상관없다. 유약하고 여린, 소심하고 세심한 '나'로서 적당히 살아가고 싶다.  


 출처: https://pixabay.com/images/id-830988/

          


   

매거진의 이전글 어디 나 같은 사람 없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