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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Feb 02. 2022

연휴의 마지막 밤, 좋은 꿈 꾸시기를

벌써 연휴의 마지막 날이 되었어요. 기나긴 5일의 시간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평일 5일, 그러니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를 돌이켜보면 시간은 마치 굼벵이처럼 더디게 흘러갔는데. 연휴가 되니 그 5일이 쏜살같이 사라졌어요. 오늘이 벌써 수요일이니 '목요일, 금요일만 견디면 된다'라며 정신승리를 해보려 하다가도 미뤄두었던 일들과 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제 발로 사무실에 감금되어야 하는 신세에 가슴이 미어지네요.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거예요.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으레 헤어지기 싫어지듯, 연휴의 끝자락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이별을 두려워해요. 연휴를 기다리며 기대했던 '쉼'의 시간은 늘 그렇듯 현실이 되지 못했고, 남아 있는 건 적지 않은 피로감과 다가오는 내일에 대한 스트레스예요. 사실 '내일 출근'에 대한 고통은 대체로 저의 생각에서 비롯되어요. 내일 출근해서 해야 하는 일, 만나야 하는 사람이 제 스트레스의 대부분이에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내일이 다가온다는 생각이 커질수록 오늘의 '나'는 작아지네요. 


저에게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두 시간이에요. 제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해야 남은 이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며 내일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습게도 저는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네요. 저도 모르게 브런치에 들르고야 말았으니까요. 저에게 어떠한 당장의 이익도 가져다주는 활동은 아니지만, 적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그저 소중하고 감사해요.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적어볼까?' 생각했는데 조카들과 있었던 일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제 조카들은 쌍둥이예요. 이름은 우진, 서진이고요. 어느덧 올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제 조카들은 저와는 다르게 씩씩하고 활동적이에요. 지난 여름이었던 것 같아요. 하루는 조카들이 곤충 채집을 하겠다고 잠자리채와 곤충채집통을 가지고 나타났어요. 저희 집 앞에서 만났는데 잡으려는 곤충은 안 잡고 저를 잡은 건 여전히 재미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저는 곤충일까요..?


저희는 다 같이 손을 잡고 홍제천으로 갔어요. 가까운 곳 중에 곤충을 잡을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거든요. 홍제천에 도착하고 보니 곤충은 눈에 띄지 않았어요. 오가는 사람들로만 가득했거든요. 저희는 수풀 사이를 걸어 다니며 개미나 파리를 잡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자주 보던 곤충인지라 조카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했어요. '이대로 돌아가려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 제 눈에 나비 한 마리가 들어왔어요. 


살랑거리며 날던 나비는 머지않아 풀잎 위에 앉았어요. 나비를 추적하며 조카들과 함께 뛰어온 저는 고민할 새도 없이 앞이 잠자리채를 휘둘렀어요. 서진이의 것이었어요. 한 시간 남짓을 방황하다가 잡은 나비여서 그런지 기쁨이 샘솟았어요. '내가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지나간 뒤에는 '조카들이 좋아해 주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카들을 돌아보았어요. 기뻐하는 서진이와는 달리 우진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어요. 우진이는 가까이 다가와서 저에게 말해주었어요. "내가 잡아보고 싶었는데..."


저는 조카들에게 나비를 잡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직접 잡아보고 싶은 우진이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어요. 잡아주기만 하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더위에 지쳐있던 서진이와는 달리 우진이는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지었어요. 저는 함께 잡은 거라며 우진이를 다독였지만, 크게 가닿지는 않는 것 같았어요. 되려 집에 가는 길에 스스로 잡은, 흔한 콩벌레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어요. 우진이가 스스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가 빼앗았다는 사실을요. 


저는 어쩌면 나비를 놓치는 일도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잠자리채를 우진이가 직접 휘둘렀다면요. 그렇다면 우진이는 삼촌이 나비를 잡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가 아니라, 자신이 쫓던 나비를 잡기 위해 잠자리채를 휘둘러본 이가 되었을 테니까요. 제 어린 시절도 비슷해요. 저의 부모님은 제가 고생하며 자리자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셨어요. 제가 무언가에 흥미를 느끼고 시도하기 전에 먼저 시켜주시는 편이셨지요. 


저는 제 의지대로 시도해 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그런데 그 무엇보다 저를 어렵게 하는 건 새로운 걸 시도하는 용기가 부족하다는 것이에요. 만약, 부모님이 제가 스스로 나비를 잡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셨으면 어떠했을까요. 저는 저를 대신하여 나비를 잡아주지 않은 부모님을 탓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잠자리채를 힘껏 휘둘러 본 경험을 바탕으로, 다가오는 곤충들에게 기꺼이 잠자리채를 휘두르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저는 그날 이후로 조카들이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더욱 기다리게 되었어요. 한 번은 감기에 걸린 우진이가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진이는 약을 먹기 싫다며 떼를 썼어요. 할머니는 억지로라도 먹이려고 했는데, 저는 그러지 말자고 했어요. 그리고 우진이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듭 얘기했어요. "우진아. 우진이가 이 약을 먹기 싫어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우진이가 덜 아프기 위해서는 이 약을 꼭 먹어야 해. 우진이가 먹을 때까지 삼촌이 기다려줄게." 그러자 우진이는 몇 분 지나지 않아 스스로 약을 먹었어요. 


이러했던 조카들이 이제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네요.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을 곁에서 오래 지켜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도 건강하게 살아나가야 할 텐데. 내일 출근을 한다며 부쩍 움츠러들고 말았네요. 사람에게는 익숙해지지 않는 경험도 있나 봐요. 직장인으로서 처음 맞는 연휴도 아닌데, 처음인 것처럼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으니까요. 문득 어디로 도망치고 싶은지도 적어보고 싶지만,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까 해요. 우진이, 서진이를 생각하며 행복했거든요. 조카들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떠올리니 그저 감사하게 되네요. 이들은 저에게 분명 선물 같은 존재예요.


여러분들의 이번 연휴는 어떠했나요.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 사연은 물론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겠어요. 여러분들의 경험을, 그 경험의 깊이를 제가 알지는 못하지만, 남은 이 시간을 오늘의 '나'로 보내시길 진심으로 바랄게요. 모두 좋은 밤 보내시고, 좋은 꿈 꾸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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