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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Feb 01. 2022

나무에 기대어 가만히 쉬어가는 시간

저는 요즘 아침마다 명상을 하고 있어요.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저에게 영원할 것만 같은 고요를 선물해주거든요. 명상을 따로 배운 적은 없어요. 잔잔한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호흡을 느끼기 위해 노력할 뿐이에요. 호흡에 집중하다 보며 한번씩 나타나는 장면들이 있어요. 그 상상은 늘 새롭고 창의적이어서 그것이 지금 떠오른 의미에 대해 스스로 묻곤 해요. 저번에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혼자 팽이를 치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추운 날씨였는데 저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혼자 팽이를 열심히 돌렸어요. 


저는 여전히 그날을 기억하고 있어요. 친구들이 다가와주기를 기다렸거든요. 그들과 어울리며 놀고 싶었는데. 집으로 먼저 찾아갈 용기는 없고, 저는 다만 그들이 다가와 손을 흔들어주기를 기대했어요. 그 장면이 떠올랐던 시기에 제가 주로 느낀 감정은 외로움이었어요.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혼자 있어도 외로웠거든요. 이러한 외로움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팽이 치는 어린 제 모습이 명상을 통해 저에게 나타났어요. 그 장면을 보고 저는 저의 외로움을 깊이 느낄 수 있었어요. 여전히 외로웠으나 스스로 알아주기 위해 더욱 노력하자 일상을 전복시킬 만큼 외로움이 넘치지는 않았어요.


한 주 전이었어요. 저는 그날도 명상을 하고 있었어요. 방 안에는 노란 스탠드 하나가 제 마음을 밝히고 있었어요. 명상을 할 때마다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 건 아닌데, 이날도 하나의 장면이 나타났어요. 뒷산이었어요. 만화에 나올 법한 그런 뒷산이요. 발목에 닿을 정도의 잔디가 널게 깔려 있고,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 길의 꼭대기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어요. 그 나무는 한 사람이 기대어 앉기에 충분한 크기였어요. 


저는 나무에 기대어 앉아 두 발을 가지런히 뻗었어요. 하늘 뒤편에는 해가 쨍하니 떠있었지만 제가 앉아있던 곳은 오직 그늘이었어요. 나무가 해를 가려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림자조차 사라진 그곳에서 몇 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가만히 머물 수 있었어요. 숨이 탁-하고 트이는 게 느껴졌어요. 구름이 어떻게 생겼다든지, 햇빛이 얼마나 강하다든지, 지저귀는 새의 움직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 장면이 상상 속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출근을 5분 앞두고 명상을 하고 있다는 상황도 잊은 채, 쉬었어요. 


저에게 필요했던 건 쉼이었어요. 이런저런 생각들에 빠져 고민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도 잊은 채 쉬는 그런 시간이요. 내일은 벌써 연휴의 마지막 날이에요. 평일의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는데, 연휴만 되면 시간은 쏜살같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저는 내일 인적이 드문 조용한 자연으로 찾아가 가만히 쉬어볼까 해요. 외면하기에는, 해야 하는 일들로 스스로 다그치기에는 저는 충분히 지쳐있으니까요. 내일 잘 다녀올게요 :)  


    

다가와 앉아

너의 그늘이 되어

그림자를 없앨 테니


너라는 사실도 잊은 채

하늘을 우러러보며

가만히 쉬어가렴


우리는 감각으로 느낄 뿐

구름의 생김이라든지

해의 안색이라든지

새의 생각이라든지


알 수 없는 것들 뿐이니

등을 기대어 앉아

잠잠히 쉬어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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