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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Feb 20. 2022

아프기에 자신을 돌보게 하는 상처처럼

"상담자와 내담자의 진실한 관계도 중요하지만, 저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만났던 한 사람은 나에게 말했다. 상담의 효과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나는 상담자, 내담자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나는 상담에서 맺는 상담자와의 진실한 관계가 내담자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내가 상담에서 보이고자 노력하는 진실한 태도는 '자기 이해'에서 출발한다. 나는 7년 동안 글을 써오며 나와 만났다. 내 글의 주제는 대부분 나의 경험이었다. 좋은 경험이든, 안 좋은 경험이든 책상 앞에 앉아 나를 꺼내 놓았다. 그 경험이 나에게 준 영향은 무엇인지, 지금 내 상태는 어떠한지, 앞으로 비슷한 경험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고 싶은지 처럼 나는 현재의 마음과 내 경험을 분리시키며 여러 각도에서 스스로를 뜯어보았다. 글의 마무리는 대부분 '앞으로의 다짐'이었고, 글을 통한 삶의 복기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었다.


내가 나 자신을 잘 안다고 말하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어떤 상황을 선호하는지, 싫어하는지, 그 상황에서의 나의 주된 행동 같은 정보가 많이 쌓였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나 스스로의 상태를 느끼는 데에 익숙한 편이다. 그래야만 그 경험을 생생하게 글로 녹여낼 수 있고, '새로운 다짐'과 함께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초보 상담자이기 때문에 아직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과거 경험으로 인해 내면에 남아있는 느낌과 상담에서 겪는 느낌을 구분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느낌을 내담자에게 조심스레 전달하며 한 계단씩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애쓴다. 이러한 경험이 나날이 쌓여가던 나는 상담에서 중요한 것이 '진실한 관계'라고 얘기했는데, 그 한 사람은 '좋은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그와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나는 최근에 좋은 질문을 던지는 상담자였는지 생각해보았다.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관계에 보다 집중한 나머지 질문을 던질 기회를 놓치곤 했다. 좋은 질문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물론 다르겠지만, 나는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관점에 몰두한 나머지 상황이나 상태 등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상황이나 상태 등을 그와 같은 자리에 나란히 앉아 충분히 듣다가, 그의 이야기가 한 번씩 끝날 때에 하는 질문들이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멀찍이 떨어져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때로는 보다 세밀하게, 내담자가 가진 고민의 유형에 따라 그를 구체적으로 알아가기 위해 묻고, 또 묻는다.


한편, 나는 최근에 나 스스로를 알아가기 위해 좋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나 반문해보았다. 이 또한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의 오늘은 절망스럽다.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그만두고 싶지만 이곳보다 나은 대안은 없는 것 같고, 계속 다니자니 죽기 만큼 싫다. 이 직장은 분명 내가 선택해서 들어온 곳이다. 물론, 이토록 힘든 경험을 나에게 줄 것이라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나의 선택에 의해 지원했고 입사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그만두지도, 그렇다고 계속 다니지도 못할 상태가 되니 눈가는 마를 새 없이 차오르고, 차올랐다.


나는 여전히 자기표현을 어려워하는 편이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경우에 더 그렇다. '포기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나 자신과 싸운다. '수호야, 너 자신의 힘듦에 굴복하지 말고, 고개를 들어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야지' 하는 생각까지 들면 나는 한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집중하고 노력한다. 나는 이내 '나의 고통이 들어설 곳은 아무 데도 없구나' 생각하며 얼룩이 드리워진 창문으로 눈부신 햇살을 바라보고, 바라본다. 


주변 사람들의 삶이 어려울수록 나는 나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편이다. 그들의 힘듦에 내 힘듦을 더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나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그렇게, 삶에 대한 희망을 하나둘씩 접어가던 찰나에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 마음으로 아프게 다가왔다. 


당신에게 일어난 나쁜 일의 99%가 다른 누군가의 잘못일지라도, 나는 나머지 1%에 주목하고 싶군요, 그 부분은 당신 책임입니다. 비록 그것이 매우 작은 부분일지라도 우리는 당신의 역할을 봐야 해요.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최웅용, 천성문, 김창대, 최한나 (역) (2020). 치료의 선물(개정판). Irvin D, Yalom의 The Gift of Therapy. 서울: 시그마프레스.        


내가 겪는 어려움에는 분명 나의 책임이 있다. 그만두고자 한다면 적절한 직장을 찾아야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계속 다니고자 한다면 내가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어야 하지만 그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나에게 다가오는 외부적인 상황들을 내가 어찌할 방법은 없었지만, 그러한 상황에 따라 나의 행동을 선택할 수는 있었다. 만약 외부적인 상황들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99%와 같다면, 그에 따른 행동은 나에게 주어진 1%와도 같다. 이 1%는 바람 잘날 없다고 느껴지는 일상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기어코 살아가게 하는 불씨이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꺼지지 않는 희망과도 같다. 


나는 며칠 전 내가 겪는 어려움을 상사에게 이야기했다. 나의 어려움을 해결해달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직장의 구조를 나의 바로 윗 직급인 상사가 어찌할 수는 분명 없으니까. 나는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몫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최근에 직장에서 힘들어하는 부분을 최대한 솔직하게 얘기했다. 무언가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효과는 바로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상사에게 꺼내며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상사가 내 입장을 이해해준다거나 해서 체감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몇 개월 동안 마음에 담고 다니던 어려움을 비로소 꺼냈다는 그 자체가, 그 경험이 나에게 후련함이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이제 안다. 나에게는 좋은 질문이 필요했다. 비록 질문은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지만, 필요한 질문은 사람의 마음을 이따금씩 아프게 한다. 하지만, 그 질문의 의미를 곱씹으며 우리는 성장한다. 자신의 상황이나 상태 등을 보다 객관적으로 마주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감으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내가 경험하는 어려움들을 기꺼이 꺼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후련함'을 생생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필요했던 질문은 어쩌면 "이토록 괴로워하는 데에는 0.01%라도 분명 수호 씨의 몫이 있을 텐데, 제가 방금 한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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