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Aug 09. 2022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친구에게,

'꿈을 꾸었다'라고 첫 문장을 시작한다면 이것만큼 진부한 표현은 없을 것 같다. 나에게 꿈은 끼니를 때우는 것만큼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첫 문장에서부터 꿈 얘기를 꺼낸 이유는 지난밤에 꾼 꿈이 조금 특별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꿈의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한 명의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했을 뿐이다. 친구와는 유치원 때 만났다. 우리 동네로 새로 이사 왔었고, 서로에 대해 특별히 고민할 것도 없이 가까워졌다. 우리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부터 멀어졌다. 친구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까닭이다. 새로 알게 된 반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전보다 일찍 등교하기 시작했고, 그간 함께 등교하던 친구는 일주일 동안 나 없는 우리 집에 들렀다. 


반 친구들과는 당시 유행하던 게임을 함께 시작한 사이였다. 반면 동네 친구와는 새로울 게 없다고 느껴지던 관계였다. 반 친구들과 낯선 게임에서 함께 여행하는 것이 즐거웠고, 동네 친구와 만나서 노는 시간이 이전처럼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두 부류의 친구들과 적절히 친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마음이 보다 끌리는 만남에 집중했다. 그렇게 동네 친구와 함께 등교하는 걸 포기하고, 학교에 일찍 가서 반 친구들과 게임 얘기하는 시간을 선택했다.


그 이후로 같은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동네에서 가끔 얼굴을 마주쳤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사소한 계기라고 하기에는 일주일 간 반복된 이기적인 행동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침마다 함께 등교하는, 지난 3년간 이어져 온 암묵적인 약속을 아무런 얘기도 없이 깨버렸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먼저 등교했다는 얘기를 일주일 동안 들었던, 우리 집 현관을 빠져나가던 친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때의 기억을 가끔씩 떠올리며 서툴렀다고 하기에는 다분히 기회주의적이었던 나를 돌아보고는 한다.


그런데, 꿈에 그 친구가 나타났다. 나와 같은 서른다섯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얼굴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우리는 20년도 더 된 시간을 잊은 듯 편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화를 나누었고 그때의 친구 표정이 편안했다는 것이 생각난다. 한참을 친구와 대화하다가 마음에서 한 마디 말이 떠올랐다. "미안해"라는 말이었다. 


그때,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친구가 나 없는 우리 집에 처음 방문했던 날, 그다음 날, 일주일째 되던 날, 그 이후로도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이러한 나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비록 꿈이지만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꺼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사과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 까지는 기억나지만 그 이후가 기억나질 않는다. 어떻게 끝이 났을까.  


나는 아마 사과를 하지 않았을까. 미안하다는 말을 울먹이며 꺼내지 않았을까. 꿈은 사람의 무의식을 반영한다고 하니 친구에게 사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나타나지는 않았을까. 눈을 감고 친구에게 사과하는 장면을 잠잠히 상상해본다.


미안하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괜찮다고 한다. 마치 다 지난 일을 여태껏 기억하고 있었냐는 표정이다. 나는 그 말에 안도감을 느끼며 친구의 손을 잡으려 한다. 기꺼이 마중 나온 친구의 손은 나의 시도가 어색하지 않게 팔을 천천히 흔들어준다. 우리는 그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서로의 눈을 보며 알아간다. 저마다의 눈에는 스스로 헤쳐 온 삶의 경험이 담겨있다. 말하지 않고 다만 눈 속에 담긴 사연을 궁금해하며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뜰 때까지 가만히 마음을 나누었다.


Image by un-perfekt from Pixabay



보고 싶다.

미안해, 진영아.

작가의 이전글 마음이 어려울 때, 나를 위로해주던 빛을 꺼내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