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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Sep 06. 2022

합격은 미라클, 불합격은 뿌링클

"선생님, 목소리가 완전히 갔네요.."

"네.. 같이 준비는 못하지만 마지막으로 인사는 나누고 싶었어요."


지난 금요일, 함께 면접 스터디를 하던 선생님들과 화상으로 만남을 가졌다. 원래대로라면 이날도 모의 면접 형태로 공부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틀 전인 수요일에 나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목소리는커녕 앉아 있기조차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다. 


"우리 열심히 준비했으니 내일 면접 잘 마치고 다시 만나요."

"네. 선생님 몸 관리 잘하시고, 내일 파이팅이에요."


코로나에 확진되었지만, 면접이 화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면접 당일까지 좋지 않은 몸 상태가 이어졌고, 면접 준비와 같은 사치스러운 행동보다는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에 전력을 쏟아야 했다. 


면접시험은 1년에 1번 진행되었다. 만약 떨어진다면 1년을 고스란히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머릿속에서는 '떨어지면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이 계속 일어났고, 몸은 코로나의 영향으로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쉬어주어야 했다. 오직 마음만이 '괜찮을 거야'라는 말을 건네주었다. 불안에 떠는 어린 가슴을 따스하게 감싸주던 엄마의 품처럼 마음은 나를 챙기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윽고 이어지는 '왜 하필 이때 코로나에 걸린 걸까?' 하는 생각은 또다시 나 자신을 괴롭혔다. 


"네. 코로나 양성이시네요. 약 처방해드릴게요."    


면접을 3일 앞둔 날,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코로나에 확진되었다고 했다. 이날 아침부터 오한 증상이 있었고, 자가 키트로 검사했을 때에도 양성이 나왔던지라 예상했던 결과이기도 했다. 다른 진료를 위해 병원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먼저 전화를 하고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한 시간이 넘는 여유가 필요했다. 


코로나가 유행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나는 그간 코로나에 확진되지 않았다.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일적으로 필요하거나 특별한 상황이 생길 때에만 만남을 결심했다. 그렇지 못한 만남에서는 마음 한편에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대화를 이어갔다. 가끔씩 몸이 아플 때면 코로나 검사를 했고, 언제나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자연스레 나는 코로나로부터 안전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최근에 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거리를 자주 걸었다. 고립감 때문이었다. '회사'는 일상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중요한 과업이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나 관계는 내 삶의 중심이 되었고, 나의 시계는 언제부턴가 회사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그러한 '회사'라는 존재가 퇴사를 기점으로 유치가 빠지듯 삶에서 갑자기 사라지게 되었다. 회사를 위해 보내던 시간들이 나에게 오롯이 주어졌고, 나는 그 시간들을 어찌할 줄을 몰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면접에 꼭 합격해야 한다는 생각과 씨름하며 보냈다.   


코로나로 주변 관계는 대부분 멀어졌고, 내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나를 위한 활동은 걷기였다. 여전히 코로나가 어디에서 어떻게 걸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우울감을 키워갔던 고립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발버둥으로 코로나에 걸렸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나를 탓하기 어렵다. 면접 준비과정을 돌이켜보면 책상에 앉아 2시간 이상 집중했던 일이 드물었다. 글자 속에 파묻히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여러 감각을 활용하기 위해 소리를 내서 읽거나 글씨를 써보아도 마음에서는 외로움이 몰아쳤다. 


나는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걷고, 다시 걸었다. 그리고 또다시 책상에 앉아 면접을 준비하고,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묻기 위해 거리를 배회했다. 나에게는 사람이 필요했다. 퇴사로 비어버린 시간을 균형 있게 보내기 위한 누군가와의 만남이 절실했다. 하지만 선뜻 연락하지 못했던 나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면접에서 떨어지게 될 거라는 파국적인 생각을 마음에 품고 다가오는 면접을 손꼽아 기다렸다. 


기다리던 면접 결과가 나왔다. 불합격이었다. 비대면으로 면접이 진행되었기에 코로나 확진에도 불구하고 면접을 치를 수 있었다는 자체가 어쩌면 감사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대면으로 진행되었다면 면접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꼬박 1년을 기다려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면접 결과보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면접에 반드시 붙고야 말겠다는 생각 때문에 나를 충분히 돌보지 못한 지난 1달의 시간이다. 


회사에 출근하던 마지막 2주 동안은 아침마다 대부분 눈물을 흘렸다.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고, 입꼬리를 애써 올리며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런 자극이 없는 고요한 공간에 머무르며 하늘도 보고, 바다도 보고, 그저 가만히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자격증 면접이 1달 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회사에서처럼 면접에 합격하기 위해 나를 몰아붙여야 했다. 


인생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에 1달 전으로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마음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싶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괜찮다는 말은 자신의 마음을 돌보게 하는 기적의 수단이다. 면접에 대한 생각으로 소홀했던 마음을 조명하고, 지난한 자세로 외면해왔던 감정들을 쓰다듬어주고 싶다.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그리고 네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천천히 해나가라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욕구들을 인정하고 허용해주고 싶다. 


면접을 마친 날에 문득 이런 생각을 했었다. 면접에 합격하다면 그것은 미라클이고, 면접에서 떨어진다면 그것은 뿌링클 감이라고. 기적은 현실이 되지 못했으니 아무래도 오늘은 나에게 뿌링클을 선물해주어야겠다. 자격증을 따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취업을 준비해야겠지만, 앞으로의 현실이 다소 막막하게 느껴지지만, 오늘은 그저 치킨을 먹으며 성큼 다가온 가을에 마음을 맡겨보아야겠다.  

Image by damesophie from Pixabay


우리나라에 또다시 태풍이 다가왔습니다.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또한 저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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