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는 우울감에 비친 햇빛은 조카들의 미소

by 두근거림

우준이와 서준이는 날이 갈수록 성장했다. 아이들이 커 나가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건 그 자체로 커다란 축복이었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연신 꼼지락 거리던 아이들은 제 힘으로 서기까지 발달을 거듭했다. 분유를 먹은 조카들이 트림을 할 수 있게 등을 토닥이던 순간, 잠에 들지 못해 울던 조카들을 품에 안고 재우던 순간,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나를 향해 웃어 보이던 순간은 떠올릴 때마다 행복에 젖어든 나를 이내 발견하게 한다.


조카들은 일찍부터 나에게 마음을 열었다. 예전 사진을 찾아보면 태어난 지 6개월 정도부터는 대부분 나를 향해 웃고 있다. 조카들의 집에 들렀을 때, 나를 본 이들이 입꼬리를 번쩍 들어 올리며 환영해주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물론 처음부터 나를 반겼던 것은 아니었다. 타인을 경계하는 모습이 드러나던 때에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엄마 주변에서 긴장한 눈빛을 보내던 우준이와 서준이 때문에 먼발치에 앉아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날도 있었다.


이러한 조카들이 마음으로 크게 다가왔던 순간은 돌잔치를 하던 날이었다. 우준이와 서준이가 태어난 지 일 년이 되던 주말에 돌잔치가 열렸다. 돌잡이를 마치고 누나와 매형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을 때, 우준이가 내 시야에 나타났다. 우준이는 자신의 돌을 축하해주는 사람들 곁을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지며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놀란 마음에 우준이에게 다가가니 다른 사람들을 뒤로하고 양팔을 가득 펼치며 나의 정강이에 안겼다. 낯선 사람과 나를 구분하고, 내 품에 안겨 주변을 관찰하던 우준이를 보며 조카들이 나를 안전하고 편안한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울감이 깊어질 때면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혼자서는 우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까닭이다. 내 방에는 한 때 곰팡이가 핀 적이 있었다. 더운 방 안과 달리 찬기가 도는 복도는 곰팡이가 피어나기 좋은 환경이었다. 책장 뒤로 서서히 퍼지던 곰팡이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회사에서의 관계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던 시기이기도 했다. 두 번째 회사에 다닐 때였다. 그때의 나는 회사 밖에서 맺는 관계도 물론 어려워했지만,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독 어려워했다. 일반적인 관계와는 다르게 일이라는 요소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일을 잘한다고 칭찬받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결과를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수치도 필요했지만, 상사의 입맛에 맞추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시절이기도 하다.


조카들의 돌잔치 즈음에 기분 변화가 심한 상사를 만났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의 기분에 따라 괜찮게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분노의 증거가 되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기왕이면 그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을 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내가 하던 일에 대해 상사는 잘 몰랐기 때문이다. 당시의 내가 하던 일은 나만 할 수 있었다. 내 업무를 경험해본 유일한 담당자는 나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퇴사했다. 일을 하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상사에게 물어보면 애매한 대답을 하기 일쑤였다. 요리로 비유하자면 담당자 입장에서 음식의 간을 싱겁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그 요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만, 상사가 자신의 입맛만 고려하며 짜게 만들 것을 요구하면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상사의 입맛에 맞추자니 일에 차질이 생길 것 같고, 담당자로서 적절한 방향을 선택하자니 돌아올 상사의 반응이 두려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나는 스스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어버렸다. 상사가 웃을 때에야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고,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감추며 하루를 보냈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일상은 균형을 잃어갔다. 쉬어야 할 시간에도 회사에 대한 생각이 침투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끊이질 않던 부정적인 생각으로 끼니를 거르기도 했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집 안을 수시로 돌아다녔고, 베란다에서 부러움의 시선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우울감은 심해졌다. 내가 우울감이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계기는 발견했던 곰팡이를 방치하는 일에 있었다. 책장 뒤의 곰팡이는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번졌다. 이때라도 곰팡이를 제거하고자 결심하고 행동에 나섰다면 더 크게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퍼져가는 곰팡이를 알면서도 제지하지 못한 채 가만히 지켜보던 날들은 당시의 내가 얼마나 우울했는지를 말해주는, 마음이 반영된 결과였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의 의지로 우울감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자신의 우울한 기분을 해소하기 위한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행동과 노력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경험하는 우울감이 스스로 감당할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누군가의 존재가 필요해진다. 우리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가 주는 위로는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손을 포근히 감싸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평평한 바닥으로 올라서기 전에 손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체온을 먼저 느끼게 된다. 이러한 온기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동시에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스스로 행동하게 만드는 힘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나를 위한다며 하는 말보다, 행동보다 가만히 곁에 있어주는 것이 더욱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내가 원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나에게 필요할 거라 생각하며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에 나의 마음을 알아가거나 알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이어지는 '네 마음을 이제 알 것 같아' 하는 공감의 침묵은 애써 감춰 온 눈물을 쏟게 한다. 두 번째 직장에서 원형탈모를 겪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던 내가 조카들을 자주 찾아갔던 이유는 "삼촌은 지금 그대로 괜찮은 사람이야" 말하는 것 같은 그들을 보기 위함이었다. 조카들과 함께 있을 때면 말이나 행동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평화를 경험하고는 했다. 고요함 속에서 피어나던 조카들과 나 사이의 호흡은 우리를 오직 그 순간에 머물게 했다. 그곳에서 근무하며 사람과 일로 한창 고통받던 때에 조카들이 돌잔치를 하였으니, 마음으로 퍼지던 곰팡이로부터 나를 보호했던 햇빛은 아무래도 조카들이 아니었을까.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맑은 미소가 어지러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웃게 만들었으니까. 조카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세상 최고의 존재가 되었으니까. 나의 작은 표정에도 눈길을 주며 궁금해했으니까.


"따따따따~"

"꺄르르르르"

단조로운 소리에 좋아하던 우준이와 서준이를 보며 누나는 말했다

"애들은 저게 뭐라고 좋아한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는 누나에게 말했다.

"마음으로 전하는 언어는 의미가 정확하지 않아도 통하는 거야"


woman-g22965e496_1920.jpg Image by StockSnap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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